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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s Mar 09. 2021

구직자들에게 보내는 백수의 응원

5년째 취준 중입니다.

2016년, 한참 첫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다. 지금은 더하지만 그때도 취업은 어려운 시기였고, 매일매일 날아오는 탈락 소식에 자존심과 패기가 점점 꺾여가던 때였다. 어떻게든 전쟁터 같은 취업시장에서 발버둥 치려고 애쓰고 또 애썼다. 


일말의 정보라도 구하기 위해 스펙업 같은 취업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다양한 글들을 보자니,


'서류 합격했어요!' 


'인적성 발표 언제 나와요??' 


'면접 같이 준비하실 분...'


등 과 같은 글이 많았다. 


그럼 난 그런 글 들 하나하나에 악플을 달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데, 이는 서류통과도 하지 못한 내가 갖게 되는 박탈감일 것이다. 박탈감.


살면서 수많은 박탈감을 느껴보았다.


15살, 학원에서 찐따처럼 구석에 있으면서, 여자애들과 어울려 노는 다른 남자애들의 모습을 보며,

18살, 입학 테스트도 떨어져서 그 당시 잘 나간다는 수학학원 등록조차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20살, 내가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여자와 꽁냥대는, 여유가 넘쳐 보이는 남자 복학생 선배들을 보며, 

23살, 아베크롬비 모델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나보다 더 세련되고 덩치도 훨씬 큰 근육몬들을 보며,

25살, 집이 엄청 잘 사는 옛 여자 친구가 삼각김밥을 사 먹는 나를 다른 친구와 뒷담화하는 걸 보며,


...


이외에도 수많은 박탈감을 맛보았겠지만, 항상 적응할 수 없는 것이 박탈감이 가지는 특유의 떫은맛이다.

아무래도 감 중의 가장 떫은 감은 박탈감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박탈감은 참게 되면 혼자 울면 그만이지만, 못 참으면 대학 강의실에 총기 난사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는 난, 혼자 울어야 할지 총기 난사를 해야 할지 몰랐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


삶의 고통에 시달릴 때, 위로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나에게 찾아온다. 


그날도 어김없이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면접 스터디를 하러 강남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는 하염없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페라리가 분명한, 빨간색 스포츠카 하나가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버스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골동품을 잔뜩 실은 낡은 1톤 라보 트럭 하나가 털털 지나가고 있었다. 과적이 의심될 정도로 많은 화물을 실은 트럭은 자기가 이고 있는 짐들 때문에 속도도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트럭은 꼭 나 같아 보였다.


'내가 진 짐들은 모두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나를 이토록 느리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항상 저만치 멀리 가는 이들의 뒤꽁무니만 보고 있어야 하나?'


내가 짊어진 무거운 영혼의 무게 덕분에 나의 몸은 남아나질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한 일은 그 다음이었다.


고속도로에 정체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빠르게 달리던 페라리 역시 별 수 없이 멈춰 서야 했는데, 뒤이어 늦게 오던 그 낡은 라보 트럭은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 고속도로를 여유 있게 빠져나갔다. 


'그 잘난 페라리도 멈춰 섰지만, 낡은 라보 트럭은 자기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나아간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그 진부한 인생의 진리를 난 그 트럭을 보면서 깨달았고, 지쳐있던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별거 없던 그 장면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보단 속도를 추구했던 나는 결국 3번의 직장을 거치고 나서야 인생의 방향을 다시 잡기 위해 31살에 또 한번 백수가 되었다. 저 당시 26살의 나는 5년 뒤에도 또 백수가 되어있을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 어차피 31살에도 또 노니까 그때부터 벌써 엄한데 힘쓰면서 좌절하지 말라고. 무슨 직장을 다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러니 너 스스로를 존중하고 너에 대해서 더 공부하라고.'


취직이든, 이직이든 모든 구직자들에게 힘든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친구들에게 짐짓 인생의 선배마냥 하는 말이 있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게 아니라, 잘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면 무명 걸그룹 노래가 역주행하듯, 

우리의 삶에도 역주행 차트 순위 1위를 하는, 그런 빛나는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S. 자소서 꿀팁 공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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