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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s Dec 04. 2020

사랑하는 방식

슬픔 마조히스트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서 나는 어설픈 실증 주의자다.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모든 단서를 상대방에게서 찾아 헤맸다. 그들의 말투, 몸짓, 눈빛, 그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었고, 그 의미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어리석은 결론들을 잘게 부서질 때까지 곱씹고 또 곱씹었다. 보통, 혼자서 내린 판단들은 보통 부정적이었던 것들이었다.



언젠가부턴 기대보단 실망을 생각하게 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실망을 하고 나쁜 상황을 상상하는게 버릇이 되었고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분명히 나의 정신을 좀먹는 것들이겠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쉽게 하는 레저 마냥, 나는 부정적인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것은 마조히스트의 채찍질과 비슷한 것 같다. 스스로 나쁘게 생각하고, 일부러 안 좋게 생각했다. 젊은 베르테르처럼 슬퍼하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술에 취하듯 슬픔에 취하는 게 어느 순간부터 나의 취미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나만의 변태적인 슬픔 뽕삘은 사랑을 할 때마다 계속된다.



이 전의 연애들에서 1 년 넘게 길게 만났던 장기 연애들은 3번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각각의 연애들의 색깔은 달랐지만, 결국 그 끝의 이유는 비슷했다. 마음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상대방을 닦달했고, 결국 상대방도 지치고 나도 지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항상 상대방에게서 관심을 바라고, 애정을 바라며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냐 아니냐 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의 대부분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귀결되었다. 미리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라고 단정 짓고, 세상 슬픔을 다 가진 것 마냥 슬퍼하고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살면서 내가 겪는 모든 힘겨움과 슬픔의 부정적 감정들을 이해받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을 모두 상대방에게 필터링 없이 쏟아내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좋아하는 사이니까, 어떤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우리 관계는 특별하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었고, 내가 쏟아내는 부정적 감정들에 그 사람들은 질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내가 지겨워졌을 것이다. 결국 스스로가 해소하지 못한 부정적 감정들은 내 주변 사람들을 향했고,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가장 집요하게 괴롭혔다. 



-



그렇게 멋모르게 연애하던 시절의 나는 역설적이게도 항상 공허했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사랑처럼, 나는 애초에 하나였다가 신의 질투를 받아 분리된 나머지 반쪽의 몸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그런 사랑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완벽한 반쪽이 되기를 강요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지금도 나는 공허한 것인가? 왜 항상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증명받기 위해서는 연인들이 필요한 것일까?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연애를 하는 나의 이기심은 또다시 선을 넘으려 하고 있고, 나는 그것을 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대의 구질구질하고도 처절한 사랑의 경험을 여러 번 겪게 되면서 늘게 되는 건 스트레스와 주름뿐 아니라 인내심일 것이다. 30의 나이에 들어선 나로는 그 시절의 나보다는 훨씬 더 잘 견뎌내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견딘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서 내 앞에 다가오는 모든 일들을 그저 무심하게 초탈해버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모두가 그렇고, 모두가 그럴 것이다."



기대가 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나의 마음은 외부의 상처로부터 안전하다. 내가 남에게 내버린 상처, 남이 나에게 낸 상처의 아픔에 이골이 나 버린 나는 더 이상의 상처를 감당하기에는 겁이 많아져 버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고, 그렇게 오늘도 견뎌내야 한다. 언젠가는 모든 게 편안해질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두려움과 상처와 불안에 자유로운 순간이 나에게도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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