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알고리즘 그리고 개인이 만들어가는 유행의 새로운 패러다임
요즘은 유행이 너무 빨리 식는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기도 전에 끝나버린다.
최근 몇 년, 어디서나 Y2K라는 단어가 들렸고, 그 단어가 익숙해질 즈음엔 이미 90년대 미니멀리즘이 돌아왔다. 특히 패션은 과거의 기억을 리믹스하듯, 끝없이 ‘되감기’를 반복한다.
2~3년 전, 특정 셀럽들로 인해 ‘줄 이어폰’이 화제가 되더니 요즘은 길을 걷다 보면 그 줄 이어폰이 다시 거리를 누빈다.
유행은 이제 ‘빠르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주 단위, 때로는 일 단위로 회전하는 듯 보이고, 내가 ‘좋아한다’고 느끼기도 전에 이미 낡아버리니까.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새로운 무드,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Must-Have"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건 정말 내가 원한 걸까? 아니면, 누군가 설계한 욕망을 따라가고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누가 유행을 결정하는가?"
유행은 단순히 “사람들이 질려서” 바뀌는 게 아니다. 그 이면에는 모방과 구별 짓기, 그리고 세대의 심리적 구조가 얽혀 있다.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은 유행이 ‘소속되고 싶은 욕구’와 ‘구별되고 싶은 욕망’의 충돌에서 생긴다고 말했다.
모방(밴드왜건 효과): “나도 그 무리에 속해 있다”는 신호. 소속이 주는 안정감.
구별 짓기(스놉 효과): “나는 다르다”는 신호.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욕구, 희소성에서 오는 우위의 감각.
이 두 힘이 맞물리며, 유행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선도 집단이 새로운 신호를 내고 → 대중이 모방한다 → 희소성이 사라지고 → 선도 집단은 이동한다. 이 반복이 유행의 순환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속도’와 ‘결정 주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따라가는 집단’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만드는 개인’이 중심이다.
즉, 유행의 주체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하며, 트렌드는 더 이상 소비가 아니라 표현이 되었다.
과거의 유행이 소속의 언어였다면,
지금의 유행은 정체성의 언어인셈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 많이 하는 말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돌아오는 게 아니라 다시 쓰인다'가 맞다.
과거의 감성 위에 새로운 언어, 기술, 시대의 맥락이 더해지며 현재의 언어로 다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이면엔 두 가지 심리가 있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과거의 안정감에 기대려는 향수
과거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려는 자기 정의
그래서 과거의 것은 복제가 아닌 재해석으로 되살아난다.
따라서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유행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핵심은 “그 과거를 지금의 시선으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유행을 기회로 바꿀 수 있다.
결정권자: 미디어
판매 상품: 소속감
셀럽과 인플루언서, 대중 미디어가 ‘무엇이 멋진가’를 정의하고 이를 확산시켰으며, 콘텐츠 그 자체보다 홍보와 마케팅을 결합한 미디어믹스가 메시지 전달을 강화했다
브랜드는 타이밍만 잘 잡으면 반응이 터졌고, 유행의 속도는 인간의 인지 속도에 의해 제어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과거 당시 실무자로서 기획력과 예산만 있으면 ‘유행을 만드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의 유행은 '이유 없는 모방'에 가까웠다.
‘벌집 아이스크림’, ‘대왕 카스테라’처럼 반짝했지만, 지속 가능한 품질과 철학, 운영 구조가 없었다.
버징 이후 이를 지탱할 구조와 시스템이 없었기에 사라짐도 빨랐다.
Hollow Core 1.0 - 철학과 시스템이 없는 모방
팔릴 이유는 있었지만, 남을 이유는 없었다.
결정권자: 알고리즘
판매 상품: 욕망
“하루에도 수십 번,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대신 결정하는 듯 보인다. 그건 정말 ‘내 선택’일까?"
이제 유행은 인간의 감각이 아니라 데이터의 연산에서 나온다.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예측하며 보이지 않게 욕망의 방향을 설계한다.
그 결과 유행의 생애 주기는 더욱 짧아져 보인다.
과거 수년 단위로 지속되던 트렌드가 이제는 몇 주, 때로는 며칠 만에 정점을 찍고 사라진다.
하지만 속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실에는 유행을 더 짧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들이 함께 작동한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정보 과잉
센트럴 키친·OEM 인프라로 가능해진 외주 생산 구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흔들리는 상권의 단명화
본사조차 업종을 바꾸는 ‘자체 리셋’ 시스템
이 모든 것이 유행의 수명을 단축시키며, ‘속도 중심 구조’가 철학보다 앞서 버린다. 이런 구조 속에서 브랜드는 점점 ‘본질 없는 의미 과잉’ 상태에 빠져든다.
Hollow Core 2.0은 의미 과잉과 진정성 결핍을 나타낸다. 시스템은 욕망을 만들 수 있지만, 정체성은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다.
즉, 알고리즘이 욕망을 설계할 수는 있지만, 정체성까지 설계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지금의 유행은 빠르지만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매일 새로움을 탐하지만, 정작 스스로를 잃어가는 건 아닐까? '무엇이 유행인가'보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말이 이토록 어려워진 시대도 없는듯하다.
유행의 속도를 따라가면 피로가 남고, 철학을 세우면 방향이 남는다.
과거엔 "남들이 하니까"였다면, 지금은 "이게 나니까"의 시대다.
그래서 줄 이어폰의 귀환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주류(에어팟)’에 대한 미세한 저항이자, 나를 증명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즉, 자기 정체성의 선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기 정의의 언어’조차, 알고리즘은 순식간에 상품화한다. 진정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결국 또 다른 ‘의미의 과잉’뿐이다.
결정권자: 자기 정의를 설계하는 개인
판매 상품: 정체성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남들이 가진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를 정의하는 것'을 원한다.
소비자는 브랜드에게 묻는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사회 속에서 증명하기 위한 정체성의 질문이다.
이제 소비자는 ‘무엇을 살까’보다 ‘무엇을 증명할까’를 고민한다.
이 변화는 소비의 목적 자체를 바꿔놓았다.
브랜드는 더 이상 제품을 파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있도록 돕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정체성을 설계하는 주체는 미디어에서 알고리즘으로, 그리고 다시 개인에게 돌아왔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마주한 다음 시대의 본질이다.
유행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방향은 남는다. 그래서 브랜드의 싸움은 이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방향을 잃지 않은 브랜드들은 무엇을 지켜냈을까?
다음 장에서는 “유행 이후에도 남는 브랜드의 공식”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