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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30. 2020

E14. 두 번의 바디프로필 준비

첫번째 실행미수


몸을 사진으로 남길 생각,은 없었다. 반나체와 같은 내 몸을 “나”와 마주하거나 “사진작가”와 마주할 만큼의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생겨먹은 몸을 아주 사랑하거나, 자랑스러워하는 건 아니라 그런 거 겠다. 또 부족함과는 여전히 마주하고 있고, 모자름만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일 거다. 무엇보다 성 보수자인 내게 어쩐지 “벗다.”라는 동사는 낯부끄러운 단어라 그렇다. 중요 부위만 가린 내 몸을, 남의 남자가 보는 건원치 않는다.


수업하는 날의 하루였다.

두 번째 트레이너 선생인 병쓰(*작가가 지어 준 별명. 이름에 ‘병’이 있다.)는 동기부여와 피 끓는 자극을 수업 일부로 가르치곤 했다. 우기완 달리 선생의 소양이 다분한 사람이었는데, 그 날도 그랬다.


“바디 프로필 안 찍어요? 이렇게 오래 운동했으면서 어떻게 바디 프로필을 안 찍어봤데.”

“그러게요. 생각조차 안 해보고 살았네. 그런 걸 보니 찍을 생각이 없나봐요. 파하하.”

“한 번 찍어 봐요. 목표가 있어야 몸이 더 예쁘게 잘 자라요. 그리고 바싹 말려봐야 자기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제야 알 수 있어요. 그렇게 말리고 난 뒤에는 살 쪄도 예쁘게 쪄요. 라인 잡혀 살이 찐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제는 생각해 봐요.”


선생의 말에는 어쩐지 나를 자극하는 문구 전부가 있었다.

우선 몸 예쁘게 꽃 피울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과, 군살기 쫙 덜어낸 담백한 몸에 붙는 지방은, 개념 없이 밉게 찌는 살이 아니라 요모조모 쓸모 있는 모양으로 찌게 된다는 것. 몸 욕심 많은 나를 설득하기엔 충분히 양질의 대화였다.




“오케이 콜!”


그 날로 나는 바디 프로필이라는 걸, 운동 시작 7년 만에 준비하게 된다.

기간은 3달 잡았다. 꾼에게도 평균 10주가 걸리는 일을, 초짜인 내가 12주 만에 해치우기로 한 거다. 피하고 싶은 게 있어 그랬다. 그게 평소보다 더 하게 될 운동은 아니고, 장기간(내게 12주는 장기다.) 하는 식단조절이 싫었기 때문이다. 운동이야 밥 먹고 똥 싸듯이 하는 내게, 어떤 스트레스도 될 수 없다. 약간을 추가해 하는 유산소성 운동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필름에 근육 드러내기 위해, 적어도 이 정도는 되려면, 지방이 까여야 해 식단 관리는 필수다. 벗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근육,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고로 당분간 팡팡 터지는 맥주의 청량감과, 때로 생각 놓고 입에 쑤셔 넣는 한 봉지의 과자와, 짜다는 모든 소금 친 음식은 배제다. 무미담백한 12주의 삶을, 버텨야 하는 것이다. 강하게 치고 빠지자 한 건 그 때문이었다. ‘1.5배를 곱해 노력하되 배속으로 끝내자.’는게 당시 나의 바디 프로필 부제였다.


그렇게 약 2달을 살아냈다.

우선 사람을 끊었다. 단절과 동시에 먹으며 소통하는 즐거움을 잃었다. 대부분 약속은 3달 뒤로 미루었고, 이 기간이 겁나 쓸쓸하다는 나에게 “원래 바디 프로필 찍는 과정이 외로운 거 에요. 몰랐어요?”라며 선생은 별 거 아닌 일로 만들 뿐이었다. 그렇게 자발적 절교를 외친 뒤의 삶은 이랬다. 출근을 하고, 때로 출근 전 새벽 운동 하고,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집에 가 닭 찌찌와 고구마를 씹. 점심 메뉴로 샐러드를 찾았고, 심하게 배고파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면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바나나 사먹는 사치를 부렸다. 생에 가장 맛있는 바나나였다. 당시 나의 하루는 간신히 배만 채우고 사는 수준이었는데, 먹는 게 부실하니 갈수록 힘이 달리기 시작했다. 때로 무게 들다 정신을 놓기도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지난한 과정을 수번은 더 거친 트레이너 선생과 선수에게, 그들의 다부진 정신력을 향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하여튼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지난 두 달에 걸쳐 다양한 모양으로 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3분의 2를 보냈다.

근육을 만들고 지방을 덜어낸다는, 몹시 심플한 고통으로 남은 1달만 기다리던 내게. 지난 두 달을 무색하게 만든 이가 찾아왔다.


코로나 특보
“COVID19, 중국 우한에서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질환 발생해."


지난 32년을 겪어 온 바이러스와는 전혀 별개의 놈이 우리를 찾아 왔다. 사람은 사람을 겁내기 시작했고, 특히 밀폐된 공간은 거의 바이러스 성지와 같 취급 되었다. 감염의 공포는 모두를 덮쳐 나까지 전달 되었다. 마침 두 달의 근육노동과 불충분한 영양섭취로 면역체계에 위기를 맞이한 나는, 지난 8주의 수고를 없던 일 하더라도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키기로 한다.


“선생님. 바디 프로필 이번에 미뤄야 할까 봐요. 지금은 건강 지키는 게 우선 같아요.”

“그래요.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준비해 봅시다. 잘 먹고 건강 챙겨요!”


통화 마친 당장에 나는, 염분기 가득한 비빔밥을 찾았다. 지난 두 달의 땀이, 그로인해 조금은 선명해진 내 근육이, 결국 카메라 플래시도 보지 못하고 일단락 짓게 된 이 사태가 좌절스러웠지만. 비빔밥 한 숟갈에 모든 걸 잊었다. 세포가 살아나는 기분이다. 역시 사람은 잘 먹고 살아야 한다. 몇 번의 숟가락질에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고, 고추장으로 벌개진 입가를 닦으며 다음을 기약한다.


‘나는 완전히 물러선 게 아니다. 적의 태세에 대비할 몸을 갖춰 견고히 방어한 후, 다시 몸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 놓인 비빔밥 그릇엔 쌀 두 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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