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누」제1화
“그럼 우리 결혼 할래?”
“당연하지! 우리는 멋진 라이프 파트너가 될 거야.”
사람들이 겁 먹는 것과 달리 결혼은 몹시 쉬울 수 있다. 두 마음이 하나로 포개져 추진력이 생기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니 구청, 허기짐을 느꼈을 땐 대사관 앞이었다. 양국 혼인 신고를 마쳐, 그렇게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그때로 남편 훈의 나라 튀르키예와 이곳 한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동시에 시댁이 생겼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역할이 건네어 졌다. 그의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그것. 결혼을 정하기 전, 호구 조사는 진작 마친 상태였다.
“나는 위로 두 살 터울인 형이랑 어린 여동생이 있어.”
“우와, 나도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 있는데. 역시 2년은 아이 낳기 최적의 텀(term)인가봐. 그나저나 여동생?”
그에게 어린 동생이 있다고 한다. 여자 형제라기에 온 관심이 쏠렸다. 이름은 에르바.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여자아이라고 했다. 아직 튀르키예어에 해당하는 가나다라도 읽을 줄 모르고, 감자튀김에 찍어 먹거나 손으로 퍼먹을 만큼 초콜릿을 좋아한다고도 말했다. 밥 대신 초콜릿만 찾는 터라 매일 엄마에게 혼난다고도 일러주었다. 아 그게 그 에르바였어. 어쩐지, 오밀조밀하게 생긴 내 작은 손을 보며 ‘귀여워 에르바 생각나’ 하고 그가 입 맞추던 기억이 난다. 튀르키예에 있던 작고 어린 그 애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내 표정은 마냥 밝을 수만 없었다. 나이 불문, 사이즈 불문, 어쨌거나 시누이라 불러야 할 존재였다.
어려서 입버릇처럼 외우고 다닌 속담이 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개 얄밉다.’ 때로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다루었던 시누이는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이간질을 즐겼다. 그들은 약자와 강자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능력이 있었고 시댁에서 약자는 며느리, 그러니까 새언니 쪽이었다. 그게 오빠가 없던 어린 내게 눈엣가시였다. 시누이는커녕 며느리가 되는 삶 외에 다른 옵션은 없었다. 텔레비전 속 걸레질하며 인내를 갈고 닦는 새언니 모습은 곧 미래의 내가 될지도 몰랐다.
“남동생 결혼하면 올케한테 잘 해줘야지.”
“그나저나 경미, 저 결혼해요.”
“정말요? 그분과 결혼하는 군요. 축하해요!”
“시누이가 생겼어요.”
“시누는 나도 있는데. 남편한테 큰 누나가 있거든요. 전라도 사는데 자꾸만 놀러 오라고..”
“그런데 애기에요. 어린이라고 해야 하나.”
“애기?”
“시누이가 올해 다섯 살이에요.”
“푸흐흡. 진짜요? 다섯 살짜리 시누이? 그건 할 만한데요?”
그날 우드앤브릭스에 앉아 나는 아메리카노를, 그는 카페라떼를 마시며 나눈 대화는 박제된 한 장면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남는다. 시누이 그 엄중한 존재에 대하여, 에르바 그 순수한 어린이에 대하여. 경미에게 에르바 사진을 보여주며 종종 웃겨서 웃고 연신 귀엽다는 형용사를 반복해 말했던 것 같다. 해맑게 웃는 사진 속 에르바를 보다 경미는 어린 시누이에게 잘 해주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 그때는 우리 중 누구도 거대한 그를 만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금세 커피 두 잔이 바닥났다. 오후 1시가 넘어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