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마음의 분주함과 무질서로 한 달 가까이 글이 써지지 않았다. 억지로 쓰고 보면 정말 봐줄 수 없을 정도로 하찮다. 절망이다. 그럼에도 내가 정의하는 작가의 본질이라 함은 최소한 글을 써야 한다. 꾸준히 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한 줄도 써지지 않는 요즘은 한자라도 읽는 것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글을 쓰지 않을 때와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의 읽기라는 작업은 나에게 또 달리 말을 걸어온다. 세상에 이렇게 수려하고 지적인 언어로 글을 세련되게 쓰는 작가들이 많다고... 그들의 그 처음이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었든, 노력이든, 노력 그 이상의 천부적 재능을 지녔거나 잘 짜인 교육에 의해서든 어느 분야에서나 능력자들만의 필드가 있다. 어떤 글은 읽으면서 계속 감탄만하다 황홀지경까지 이른다. 또 어떤 글들은 나의 습자지 같은 얕은 지식으로는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으로 많은 작가들이 기뻐하고 축하하고 용기를 얻고 영감을 받고 있다. '내 평생 이런 일까지?'가 매번 경신되고 있으니 역시나 나에게도 놀랍기도 행복하기도 한 소식이었다. 2000년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을 보았고,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 진출을 하는 것을 보았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게임 같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영화가 철저히 상업주의로 콧대 높은 미국인들만의 전유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당당히 수상하는 것도 라이브 생중계로 직관할 수 있었다. 보이그룹 BTS가 빌보드차트에 당당히 1위 하는 것도 이제 우리 K콘텐츠는 모든 분야에서 온 지구의 문화적 관심의 중심이자 선두에서 이끌어가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정말 경이로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나는 특별히 축복받은 세대다. 아날로그를 지나 디지털, AI시대까지 경험하는 신 문화적 르네상스를 만끽하며 사는 세대라니...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고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중3 우리 아들은 실제로 저 모든 것들을 누린 내가 너무 부럽단다.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르게 너무 멀리 앞서있는데 이제 막 쓰기 시작한 내가 이제 막 걸음마 하는 내가, 이제 막 첫 술을 뜬 내가 계속 써도 될지 생각에 길을 잃었다. 쓸데없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고민만 깊어진다. 지적으로는 너무 멋진 글들이 감정적으로는 너무 세세히 쪼개져 잘 묘사된 표현들에 숨이 텁 막힐 것 같아 한 없이 작아서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어차피 저런 글들은 넘사벽이라 내가 감히 쓸 수도 없는데 나는 무얼 비교하고 탐하고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쯤에서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었지? 생각해 보았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습작 노트를 찾아 읽어 보았다. 이때도 쓰기도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나란 사람... 참 변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거참, 글쓰기에 누구에게 보여 줄 것도 아닌데 뭐 이리 변명 이유들이 이리 많담. 어려운 건 똑똑한 사람들이 하라고 하고, 가뜩이나 복잡하고 힘든 세상 좀 더 쉽게, 좀 더 가볍게, 좀 더 재미있게 써보자. 대신 진실되고, 공감되며, 솔직한 글이 되길 소망한다. 잘 보이고 싶어서 말이 많아지니 거짓과 허세로 구걸하는 꼴이 되어버리고 겉치레로 치장하니 하루아침 벼락부자가 된 졸부처럼 되어버려 우습다. 굳이 큰소리로 나를 알아 달라는 외침에 겨우 보이는 관심보다 나의 작은 속삭임 같은 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사려 깊은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자. 그럼에도 나는 얼마나 어디까지 벗어버리고 내려놓고 꾸밈없는 날것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생각만으로도 창피하다. 어쩜 끝까지 못 쓸지도 모르겠다. 한 줄 쓰고 단어 하나 남기고 다 지워버리기를 무한반복할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니 단어 하나라도 남기려 한다. 그러니 쓰자, 써 보자. 뭐라도..... 2024. 1. 30 화요일
명확해진건 처음이나 지금이나 나는 누구에게나 쉽고 공감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다. 길을 재확인했으니 다시 길을 잃지 않도록 잘 새기고 꾸준히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