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포비아

누구나 하나쯤 남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두려움

by 흥과화

맨 끝 하이패스 차선으로 서서히 들어간다. 딩동 소리와 함께 바가 올라간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한다. 여긴 고속도로다. 고, 속, 도, 로라는 걸 머리에 새겨 넣는 순간 어깨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고 손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눈은 안경을 뚫고 나갈 듯 튀어 오른다. 다음 출구가 나올 때까지 직진해야 한다. 물론 휴게소라는 옵션도 있지만 말 그대로 쉬어갈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괜찮다, 괜찮다, 앞 차 꼬리만 보면 된다...’ 빠져나가기 좋게 바깥 차선을 일찌감치 선점하고 차선은 웬만하면 바꾸지 않는다.


앞 차와의 간격은 늘 여유있게 유지한다. 이때 갑자기 어떤 차가 깜빡이를 켜고 끼어든다. 가속 패달에 있던 오른쪽 발을 재빨리 브레이크로 옮긴다. 끼어든 차가 갑자기 커다랗게 눈 앞으로 다가온다. 브레이크를 얼마나 밟아야 하는지 감이 없다. 다행히 앞 차가 알아서 속도를 내고 거리감이 유지된다. 다시 오른쪽 발을 가속 패달로 옮긴다. 꾸~욱, 꾹 반복한다. 놀고있는 왼쪽 발가락에 비해 오른쪽 발가락이 계속 고생중이다. 미안할 지경이다. 20분쯤 달렸을까. 드디어 첫 출구가 나온다. 고민의 여지없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드디어 해방.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정지선과 신호등을 보니 한결 안심이 된다. 난 이제 쉴 수 있다.


누구나 하나쯤 남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두려움, 공포의 대상이 있지 않을까. 비밀이라기엔 거창하지만, 말하기엔 쑥스러운 그런 것들 말이다. 내 친구는 뭐든지 촘촘히 모여 있는 걸 미치도록 못 견뎌했다. 그런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하필이면 흔치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남자친구 팔뚝에 작은 점들이 한 50개쯤 무리를 지어 모여 있었던 것. 친구는 볼 때마다 말도 못하게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남자친구 팔뚝을 웬만하면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또 누군가에게는 신문이 두려운 존재란다. 신문을 만질 때의 질감과 잉크의 잔향, 손에 묻어나는 검은 때가 싫단다. 그런데 그 친구는 홍보담당이다. 매일매일 하루업무가 신문보기로 시작된다. 신문이라는 두려운 존재를 맞이하기 위해 그 친구는 아침마다 심호흡을 크게 한다.


내게는 그 이상한 공포증의 대상이 바로 고속도로다. 미끈하게 쭉 뻗은 차선을 보면 얼음이 되고 만다. 단순히 속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일정 속도로 일정 시간을 꾸준히 달려야하는 것이 내겐 공포다. 최저 속도가 존재하고 일단 진입하면 일정 시간을 달려줘야 하니 내게 고속도로는 두려움 그 자체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무슨 주의력 결핍 장애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게 늘 고속도로는 피하고픈 기피 대상이다. 청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난 1년에 두세 번 늘 청주를 찾곤 한다. 그럴 땐 언제나 서울에서 청주까지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이게 다 그놈의 고속도로 포비아 때문이다. 서울 시내 어디나 차를 끌고 다니고 차로 출퇴근 하는 나지만 고속도로를 못 타니 막히는 국도를 타고 다녀올 자신이 없는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반포대교를 건너다 핸들을 45도 꺾어 가드레일을 뚫고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물론 순간적인 충동이지만 뭔가 곧게 뻗은 다리를 일정 속도로 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 것이다. 다행히 다리는 짧았고 물속으로 점프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반포대교 위가 한산할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이 떠오른다. 일부러 천천히 달려야하는 잠수교를 선택할 때도 있다.


너무 바보스러워 남들에겐 말하기조차 꺼려지지만 이런 속도감, 아우토반에 대한 두려움은 내게 여전히 숙제다. ‘뭐 고속도로 그까짓 거 안타면 그만이지’ 할 수도 있지만 언제까지나 피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포비아의 대상을 처단하지 못할 바엔 과감히 그 대상과 친해지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알콜중독 치료도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듯, 이렇게라도 나만의 비밀이었던 포비아를 털어놓으니 왠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불끈 생긴다. 고속도로야, 나에게도 곁을 좀 내어주지 않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