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초입에서 앞으로는 또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 문득 지난 20,30대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때의 나는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떤 환경들에 둘러싸여, 어떤 선택들을 해왔던가..
그런데, '아뿔싸..' 만족보다는 후회로 점철된 순간들이 머릿속의 맨 앞줄을 차지한다.
물론 안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서 성장한다는 것을. 실제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내 인생에서 '가장 나 다운 현재의 나'가 존재하는 거겠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지금의 나의 사고와 경험으로 그때의 내 인생을 전면 리모델링하고 싶다.
이런 간절함을 담아 지금의 20~30대에게 진심 꾹꾹 눌러 담은 세 가지 삶의 조언을 전하고 싶다.
그때의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상상하며..
평범한 타인의 조언에 휘둘리지 않기
'만약 내 선택이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은 자연스럽게 주변의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귀결되곤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혹은 중요할지도 모를 선택을 나보다 나에 대해서 모르는 타인에게 선뜻 의지하는 것이다. 엄청난 실수다.
나 역시도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조언을 갈구했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조언'이 내 인생을 바꾼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했을 때의 결과는 예외 없이 늘 만족스러웠다. 설령 남들의 시선에서 나의 선택이 '실패'라고 비칠지라도 말 몇 마디의 조언으로 얻지 못할 인생에서 정말 값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자력으로 결정하고 살아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의 조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나이가 많은 것과 경험의 양이나 사고의 깊이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치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본다.
여성은 남성의 삶을 모르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은 대학생의 생활을 모른다. 의사는 변호사의 삶을 모르고, 가정주부는 사회인의 고단함을 모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여러분이 멘토, 선생님, 어른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결국 그분들 각자가 경험한 '유한한 경험과 지식' 안에서 여러분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분들의 조언이 마치 여러분의 인생을 관통하는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분들이 살아온 길을 그 자체로 존중은 하되 그 안에서 본인의 삶에 도움이 될만한 통찰을 얻지 못했다면 그냥 흘려보내야 한다.
반면 여러분이 조언을 꼭 구했으면 하는 대상이 있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취를 했거나 혹은 남들과는 다른 인생 행보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남들과 다르길 원한다면 이미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해온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주변에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지만 지금은 다행히도 유튜브에서 성공한 타인의 스토리와 비결을 너무나 쉽게, 수 없이 접할 수 있다.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지 않는 한, 내가 나를 위해 한 어떤 선택도 내 인생을 망가지게 두지 않는다.
우정에 큰 의미부여 말기
시쳇말로 '의리~!'를 외치며 친구가 괴로워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한 달음에 달려가 힘이 되어주려 안간힘을 썼던 때가 있었다. (아니, 꽤 오랜 기간 그랬다 ㅜㅜ)
가족보다 친구가 늘 먼저였고, 일주일이 머다 하고 찐 우정을 다짐하기 위해 참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썼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과거의 숱한 친구들 중에서 지금 현재 내 휴대폰에 남아있는 친구는 학창 시절부터 깡그리 끌어모아 단 5명에 불과하다. 이것이 42년 동안의 나의 인간관계 성적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중에 당시 '죽고 못 살았던' 명단에 있던 친구는 단 한 명도 남아있지않다.
참 얄궂지만 관계의 유난스러움이 클수록 그만큼 지속력도 길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들과의 공통 관심사는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들고, 각자가 처한 사정과 취향은 그만큼 더 복잡하고 정교해진다.
그리고 각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배우자를 만나게 되면 우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눈에띄게 작아지게 된다.
내가 이룬 가정의 행복이 클수록 우정의 의미는 '편안함'에 더 무게 중심이 기울어진다. 반드시 정기적으로 만나 교류하고, 서로의 경조사를 유난스럽게 챙기지 않더라도 우정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대로 그렇게 챙겼던 관계와는 모두 절연한 상태...)
나이가 든 후의 우정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관계일 때 의미가 생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생활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기
직업을 바꾼 후, 지금의 일에 대한 만족과 성취감이 크다 보니 전혀 다른 일을 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가장 후회되는 것은 현재 내가 내 일을 대하는 사고와 방식을 그 당시에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난 과거의 그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 애정이 없으니 더 잘하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그것이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내 일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하고, 어떻게든 맞서서 버텨내야만 한다고 여겼다.
숫자를 두려워하면서도 숫자 공부를 하지 않고, 엑셀 함수 적용에 매번 진땀을 빼면서도 엑셀 공부를 하지 않고, 국내외 시장 조사를 밥먹듯이 나가면서도 해당 산업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다른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지 않았던 나날들이 부끄러울 뿐이다. 어디 회사에서 어떤 일 한다고 나 자신의 성공을 피상적으로 증명하는 데는 열을 올렸을지언정 진정으로 그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진심을 다하지 않았던 그때의 내가 너무 초라하고 안타깝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선택했던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그 일을 잘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고작 3개월 인턴인데요.. 계약직인데요.. 여기 잠깐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직할 건데요.. 연봉이 작아서 받는 만큼만 할 건데요'와 같은 말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몰입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반드시 성장하며 한 번이라도 몰입해 본 사람이 다른 일에도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잘 해내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일을 좋아하는 마음도 커지게 된다. 일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지면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네!' 싶은 정말 뜻밖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