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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Oct 30. 2024

오늘 1일

15화

내가 우러러볼 수 없는 그런 어른 같아 보여 울음을 멈추고 물었다.


“식사는 했어요?”


일부러 화제를 돌리려는 내 의도를 눈치챈 그가 웃으며 답했다.


“아뇨.”

“그럴 줄 알았어요. 있어 봐요. 제가 우리 엄마의 특별한 레시피가 담긴 볶음밥 해 줄게요. 커피 좋아해요?”

“네. 커피 좋아해요.”


나중에 내가 먹으려고 내려 둔 커피를 그에게 내밀고, 볶음밥을 만들었다. 특별한 레시피라고 말했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하지만 엄마가 해준 음식은 모든 게 내게 특별한 음식이다.


“맛있겠네요. 담백하게 보여요.”

“다행이네요. 이거 엄마가 만든 거 드셨으면 평생 잊지 못했을 텐데 이래저래 아쉽지만, 제가 해 주는 걸로 만족해요.”


커피를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을 짓던 그가 말했다.


“특별한 볶음밥이에요. 당신이 제게 처음 해주는 요리이니까.”


평범함과 특별함의 차이는 한 끗 차이였다. 그가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벌써 아쉽네요.”

“뭐 가요?”


그가 의자를 가져와 내 옆으로 앉더니 아주 심각한 말을 하듯 말했다.


“당신 내일까지 여기 있을 거죠?”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 10시가 되었는데, 전혀 나갈 생각을 안 한다는 건 하루 더 있을 거라는 뜻을 의미하니까요. 근데 저는 


내일 출근해야 해서 오늘 가야 하거든요.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헤어지는 거 아니잖아요.”


그가 웃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 의미가 아니에요.”


그는 나의 코를 손가락으로 톡 치더니 말했다.


“오늘, 같이 있고 싶다고요.”

“네?”


이번엔 내가 놀랐다. 오늘 처음 마음을 열었는데, 어떻게 밤을 같이 보낸다는 말인지.


“오해 말아요. 그런 뜻 아니니까. 그냥 곁에 있고 싶다 이 말이니까.”

“아, 네.”


그제야 이해했지만, 여전히 그를 불안하게 쳐다보니 그는 소리 내 웃었다. 무엇이 웃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요리한 걸 정리하며 물었다.


“더 만들어 줘요?”

“네. 저 배 매우 고프거든요.”


그의 배를 채운다고 있는 재료를 다 넣어 만들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듯이 숟가락을 물고 있는 그를 보니 귀여웠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말하면 그는 뭐라고 할까? 그리고 평소에는 안 하는 행동이겠지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내 앞에서만 하는 행동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당신은 어디서 묵었어요?”

“아, 저는 글램핑장. 체크아웃하고 올게요.”


걸어간 뒤 모습이 경쾌했다. 다 큰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무엇이 저리 신났을까?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잘한 거지? 나 실수하고 있는 거 아니지?”


여전히 답은 없다. 그러나 엄마였다면 괜찮다고 안아주었겠지? 괜찮다고 토닥토닥해 주겠지,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의 말대로 스스로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살면서 내 감정에 솔직한 적이 별로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 앞에서는 웃었고, 불만 가득한 회사 생활에서도 웃었다. 어느 순간 내 감정을 무시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저 밝고 웃는 아이로 살아온 것 같다. 감정이라는 게 항상 맑음은 아닌데 말이다.

저 멀리서 그가 캐리어를 끌고 뛰듯이 오고 있었다. 항상 문 앞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던 그는 어떤 날은 우울했고, 어떤 날은 웃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아련해졌다. 그런 그를 기억하면 그는 여러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있잖아요. 제가 저기서부터 뛰어왔는데 어땠어요?”

“네? 뭐가요? 그냥 다 큰 어른이 뛴다고 생각했죠.”

“아닌데?”


뭘 알고 말하는지 그는 집요하게 질문했다.


“우리 솔직해지기로 했죠? 기억나죠?”

“기억해요.”

“그럼 솔직하게 말해봐요.”


별것도 아닌데 어려운 숙제를 받은 듯 등에 땀에 배어 나왔다. 뭐라고 해야 그의 기분이 좋아질지 생각하다 보니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생각은 하지 말고 당신 감정만 말해봐요. 그다음은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잘 받아들일게요.”


이 사람은 내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 같다. 처음 만날 때도 그랬는데, 내가 이름을 안 알려줄지도 경찰서를 생각할 때도 말이다. 그 앞에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면서 솔직한 내 감정을 돌아보게 했다.

그는 한참을 웃었다. 그 바람에 괜히 말했나 후회되었다.


“미안해요. 당신 말이 웃긴 게 아니라 제가 너무 웃겨서 그랬어요. 중요한 건요. 당신 앞에서만 그런다는 거예요. 저는 순간마다 고백일 겁니다. 당신한테 가식은 부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 같은 생각은 아마 수시로 들 겁니다.”


또 진지한 표정, 늘 진심인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면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좋아하면서 좋아한다는 말도 못 하는 내가 뭐가 좋다고 저렇게 속을 내보이는지 그를 볼 때마다 내가 작아졌다.


“미소 씨, 나 봐요.”

“네?”

“자신을 탓하지 말아요. 누구나 처음은 어려워요. 당신은 지금 처음이잖아요. 그러니까 자신을 탓하지 말고, 그냥 연습이라 생각해요. 알았죠?”


또 그런다. 이 사람은 나에 대해서만 다 알아맞히는 도사라도 되는 것일까?


“당신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냥 당신을 너무 오래 봐왔기 때문이에요. 당신 곁에서 제 이야기를 하면서 무심결에 뱉는 당신의 대답이 있었던 거 알아요?”


내가 그랬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이 해주는 대답이 좋았어요. 단순한 대답이었지만, 그때 당신은 진심이었거든요. 저는 그래서 당신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당신 눈을 보면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대충 알 수 있어요. 당신, 생각보다 솔직한 사람이거든요.”

“왜 자꾸 당신, 당신 해요? 이름 안 부르고?”

“기분 나빴어요? 미안해요.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불러서 그만 습관이 되었네요.”


나 때문에 생긴 그의 버릇이 돼버린 것을 오히려 그를 탓했다. 지금 안아달라고 하면 그는 뭐라고 할까? 갑자기 위로받고 싶어졌다. 그때 그가 다가와 나를 가볍게 안았다. 늘 내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괜찮아요. 원래 처음은 어려워요. 그러니까 자신을 탓하지 말아요.”


그가 안아주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참으려 했지만, 참아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내 감정을 헤아려 준 것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나는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울어도 괜찮아요. 울어요. 제가 당신 이렇게 안아 줄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품에 안겨 울었다. 그의 품은 마치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따뜻했고, 아빠처럼 넓었다.


“저, 당신은 남자가 아니라 엄마, 아버지 대타로 여기면 어떻게 해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무슨 자신감인지 그는 항상 나에게만은 솔직하고 진지했다. 그 모습이 좋으면서 부러웠다. 나는 그러지 못하는 거라서 말이다.


“그래서 저녁은요?”


어느 정도 내가 마음을 추슬렀다고 생각하는지 저녁에 관해서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당신이 다 먹어버려서 아침 먹을 거도 없어요.”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당신 아침까지 해결해 줄 테니까 저와 일찍 집에 갈 생각 없어요?”

“얼마 나요?”

“새벽에요. 한 6시쯤?”

“저녁 먹어보고요.”

“제가 극진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는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일단 관리동에 가서 야전 침대 같은 것을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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