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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내 삶을 통과했을 때

| <모순> 양귀자 作을 읽고

by 은은한 온도


이 책의 줄거리를 알고 줄곧 이 책이 읽고 싶었다. 소설은 좀 신중하게 들이는 편이라 전자책을 찾고, 도서관을 검색하고, 알라딘 중고서점도 들락거렸지만 이 책은 끝내 나에게 한 장의 힌트도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책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쉬이 책장을 열지 못했다. 이 책의 단 한 글자도 읽지 않았지만 나를 휘몰아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내가 첫 장을 펼칠 그날을.



딸이 쓰는 엄마의 자서전인 내 책의 퇴고를 마친 뒤 머지않아 이 책을 펼쳤다. 읽기 시작하자 나는 책을 읽지 못하는 상황에도 내내 책을 그리워했다.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하루 안에 다 읽었을 책, 그 책을 6일에 걸쳐 읽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많이 울진 않았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후벼 파는 소설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서글펐다. 그리고 쓸쓸했다.



지금은 그 모양새가 많이 달라졌지만 안진진의 이모와 엄마는 꼭 우리 이모와 엄마 같았다. 안진진의 아빠도 꼭 우리 아빠와 비슷하지만 달랐다.



진진의 엄마를 보며 엄마 생각이 났다. 진진의 엄마보다 우리 엄마가 좀 더 소녀스럽다는 점만 빼면 그 활력과 생생함은 똑 닮았다.



한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불행이 오히려 엄마를 살게 하는 건 아닌가..? 불행이 나의 목을 꽉 쥐고 있어야 비로소 내가 살아있구나, 이런 게 삶이었구나 하고 삶을 더 힘차게 살아갈 힘이 생기는 건 아닌가 하고.



그래서 난 요즘 엄마에게 말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안락하고 조용한 삶이 그 삶이 가장 행복한 거라고.



동시에 나는 진진의 이모도 이해가 갔다. 그 지리멸렬함이 무엇이었을지.. 알 것도 같았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그래서 슬펐다.



모든 것이 완벽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지만, 행복은 물질만 풍요롭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진진의 이모에겐 그 어떤 낙이 있었을까. 숨 막히도록 고요한 하루하루. 모양만 있으면 뭐 하나 그 안에 진짜 온기가 없는데.



그래서 이것이 모순인 것이다. 한쪽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행복이라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불행이라고 말하니.



글쎄, 어떤 행과 불행을 택할지. 둘 다 예측 가능하지만 어떤 것이 더 치명적 일지. 과연 미래의 안진진은 뭐라고 답할까.






내 뺨에 또르르 눈물이 떨어진 장면은 진진의 아버지 모습이었다.



26년째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아버지가 있어서 종종 그와의 마지막을 상상해 보곤 한다. 물론 우리 아버지는 끝자락에서도 우리에게 돌아오진 않을 것이다. 내 삶에서 이제 그의 자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으니까.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이든, 네모난 영정사진 속의 모습이든, 어쩌면 어느 날 증명서 활자 속에서 발견한 두 글자이든 내가 느낄 감정 또한 비슷할 것 같다.



아직은 이 감정을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쓸 수가 없음이 애석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진이가, 진진의 엄마가 살아가듯 나는 살 것이다. 아주 잘. 세상이 모순 덩어리임을 이미 알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적당히 줄타기하면서 아주 잘 살 거다.



나는 늘 그랬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서 장렬히 그 뜨거움에 나를 내던져야 끝났다. 다행히 지금은 타 죽도록 바로 뛰어들진 않고 숨을 고르면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는 것 같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절대 속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에겐 불행이 될 수도,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현재를 감사하게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전부인 것 같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사는 것이 먼저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 나는, 과연 누구의 이야기에 눈물짓게 될까. 지금은 진진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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