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고양이 한 번 키워볼 생각 없니?”
20살의 5월, 같은 과 선배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나는 두 눈이 동그래졌다.
“고양이? 무슨 고양이요?”
선배는 본가에서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들이 자기 집에 눌러앉았다며, 그 아이들이 새끼를 낳아 감당키 어려워 분양을 보낸다고 했다. 나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뒤로 한 채 선배와 헤어졌다.
고양이! 키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새 생명을 데려오는 일이니 신중해야 했다. 아직 어린 고양이니 예방접종도 시켜야할 것이고, 시간이 좀 지나면 중성화도 해야하겠지. 게다가 고양이는 강아지와 달리 모래에 볼 일을 본다고 하던데……. 매달 사료값에 모래값까지 생각하면 금액적인 부분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돈은 그렇게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엄마가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중학생 때 어미를 잃은 새끼 길고양이를 주워온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때도 고양이의 눈이 무섭다며 치를 떨었다. 당장은 자취방에서 키우는 거니 괜찮지만 본가에 가게 된다면…….
한참을 생각한 결과, 결국 나는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약간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아, 나는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거짓말을 잘 하는 아이가 된 걸까? 마침 때는 전국적인 비가 한 차례 지나간 후였다. 엄마에게 전화로 집 앞에 비 맞은 아기 고양이가 곧 죽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데려왔다고 하자 수화기 너머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동물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빠랑 신혼 때도 강아지를 키웠었다고 했고, 지금도 본가에 키우는 강아지를 예뻐라하니 처량한 상황의 아기 고양이를 죽게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다. 고양이가 5살이 된 지금까지도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른다. 엄마가 알게되면 꽤나 배신감이 들 테지만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고 했던가. 엄마, 미안!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자 선배는 아직은 고양이가 너무 어리기에 한 달만 더 있다 데리고 가라고 했다. 빨간 날인 현충일을 고양이와의 만남일로 정하고, 그 날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화장실은 어떤 걸로 할지, 모래는 어느 회사 제품이 괜찮을지, 사료는 뭘 먹여야 할지 고민할 것이 산더미였는데도 그 과정이 전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예쁜 식기, 더 튼튼한 캣타워를 고르며 설레이는 마음을 다독였다.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아기 용품을 고르는 예비엄마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고양이를 데려오는 날, 나는 이른 아침부터 선배의 차에 올라 한참을 달렸다. 안양인지 안산인지 아직도 헷갈리는 선배의 본가는 꽤나 구석진 곳에 있었다. 집 앞의 옥수수 밭을 신기하게 여기면서 선배를 따라 방 안에 앉아 있으니 선배의 어머님께서 웬 박스 하나를 들고 들어오셨다. ‘끙차’ 소리와 함께 내려놓은 박스 안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아기 고양이들이 들어있었다. 바글바글하다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한 마리, 두마리, 세마리……. 총 열다섯마리의 사랑스러운 아기 고양이들이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세상에, 누군들 이 모습을 봤다면 심장이 녹아버렸을텐데!
하나같이 귀엽고 깜찍한 모습에 어떤 고양이를 데려가야 할 지 쉽게 결심이 서지 않았다.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고양이들은 낯선 사람의 등장 때문인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귀를 내린채 눈동자를 데굴거렸다. 하지만 그 중에 딱 한 마리, 딱 한 마리의 고양이만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나와 눈을 맞췄다. 동그랗고 황금색 눈을 가진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였다. 고놈 참 씩씩하네. 맘에 쏙 들게 말이야.
“나와 함께 가자.”
선배의 차를 타고 다시 자취방에 돌아오는 동안 고양이는 쉴 새없이 야옹야옹 울었다. 엄마와 형제들과 떨어지는 것이 슬퍼서 이렇게 우는 거일까? 미리 준비한 케이지는 아기 고양이에게 너무 컸다. 태어난지 이제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작은 고양이가 벌써부터 엄마 없이 지내도 되는 것일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것을 힘들어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다행스럽게도 고양이는 걱정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빠르게 적응했다. 아직 솜털이 보송한 손바닥만한 아기 고양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온 집안을 누볐다. 그나저나 이름이 있어야 할텐데, 이름을 뭘로 지어야 하나?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자 수많은 이름 후보들이 쏟아져나왔다. 알렉산더, 줄리아, 맥주, 고영희……. 너네 지금 장난하니? 하는 수 없이 이름은 그냥 내가 짓기로 했다. 처음엔 현충일에 데려왔으니 ‘현충이’라고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어감도 그렇고 왠지 벌레를 떠오르게 하는 이름이라 별로였다. 그 다음은 ‘삐융이’라고 지으려고 했다. 어린 것이 삐융, 삐융 울면서 집을 돌아다니기에 그 울음소리에서 착안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입에 잘 달라붙지 않아 이것도 포기했다. 결국은 그냥 여름에 데려왔으니 ‘여름이’라고 짓기로 했다. 풀네임은 ‘초여름’! 처음엔 너무 흔한 이름인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여름이에게 정말 딱 맞는 이름인 것 같다.
현재 여름이는 몇 달 뒤면 5살을 앞두고 있는 4살이다. 남들은 여름이를 볼 때마다 너무 살이 쪘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아직도 너무 말라서 더 먹여야 할 것만 같다. 이게 바로 명절마다 손주를 보는 할머니의 마음일까? 처음 데려왔을 때 이갈이를 하는지 밤이 새도록 내 발을 깨물어서 거진 한 달간 잠을 설쳤던 일, 혼자 놔두고 학교를 다녀왔더니 책상 위에 놔둔 두루마리 휴지를 다 찢어놨던 일, 냉장고 위의 디퓨저를 쏟아 온 집안이 끈적하고 향기로워졌던 일…….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젠 나이를 먹어 점잖아진 것인지 예전처럼 사고를 치진 않는다. 사고 뒷수습 할 일이 없어 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의 ‘캣초딩’시절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여름이 아기 때 사진을 보면 좀 더 어렸을 때 사진이랑 영상을 더 많이 찍어둘 걸 몹시 아쉽다.
여름이를 키우며 딸을 키우는 엄마가 이런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내 것은 만원, 이만원짜리 옷 한 벌 사는데도 이렇게 고민이 되는데 여름이 물건을 사려하면 아무리 비싸도 좋은 것으로만 사주고 싶다. 해를 거듭할 수록 점잖아지고 사고를 치지 않는 것이 뿌듯하면서도 어렸을 때의 발랄한 모습이 그립다.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나의 고양이. 아직 함께할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때를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고양이 한 마리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미 가족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여름이. 살아있는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내 곁에 있다 행복하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