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날이 왔다. 바로 학부모와 교사 면담일! 나는 집에서 차를 타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녔다. 때문에 다른 일반 학교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우리 학교의 많은 행사들에 독특한 점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교사 면담일이었다. 면담일 날짜가 정해지면 일주일 전부터 복도에 각 과목 선생님들의 이름표가 쭉 나붙었다. 자신의 부모님과 해당 선생님이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각 선생님들의 이름 밑에 원하는 시간과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 당연하게도 동일한 시간에 두 명 이상의 면담은 이뤄질 수 없으므로 인기 있는 선생님과의 면담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하지만 나는 학부모와 교사 면담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도 없었고 뛰어난 성적을 거둔 과목도 딱히 없었다. 아무 선생님 이름표 밑에 내 이름을 적어넣었다간 분명 면담일 당일,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 둘 다 할 말이 없어 머쓱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 뻔했다. 게다가 지난 2년간 교사 면담일에 오는 것은 항상 아빠였다. 엄마가 오지 않는 이유는 잘은 몰랐지만 너무 바빠서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잔소리쟁이 엄마보다는 무관심한 아빠가 훨씬 낫잖아? 결국 나는 의례적으로 담임 선생님과 유일하게 A+를 받은 사회 선생님 이름표 밑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이번엔 엄마가 갈거야.”
면담일 당일 아침, 엄마의 말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심장이 뜨끔했다. 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대화도 별로 없었다. 우리는 서로 정말 필요한 말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학교에 오다니?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래요.”
머릿속을 어지르는 생각들과는 다르게 나는 짧은 한 마디만 남기고 집을 나섰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엄마가 온다고 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나는 평소 사고 치는 학생도 아니고 오히려 조용한 편이었으니 학교에 오는 사람이 엄마든 아빠든 선생님께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들을 일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엔 달랐다. 이상하게도 나는 알게 모르게 학교에서 꽤나 골칫덩어리가 된 모양이었다. 존재감 없던 나는 틈만 나면 교무실에 불려갔고, 선생님들과 면담을 했다. 내가 그렇게나 불려다녀야 했던 이유는 버릇이 없어서도 아니고, 학교 기물을 파손해서도 아닌, 어이없지만 남자인 친구들이 많아서였다.
이 빌어먹을 학교는 교칙에 ‘연애금지’라는 조항이 있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의문이다. 미션스쿨이었던 만큼 종교적인 이유가 있는 걸까? 성경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되어 있던데. 어찌 됐든 이 학교에선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풋풋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그 교칙을 어기려 하는 못된 아이가 되어 있었다. 당시 진짜 남자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다시 생각해도 참 이상한 학교구만.
엄마는 제일 처음 사회 선생님부터 만났다. 별다른 얘기는 없었는지 면담은 금방 끝이 났다. 교실에서 나온 엄마는 나를 흘낏 쳐다보며 ‘사회 성적이 제일 좋아서 저 선생님한테 면담 신청 했구나?’하고 말했다. 마음 속을 들킨 것 같아 흠칫했지만 그냥 슬쩍 웃고 말았다. 당연한 걸 뭘 물어? 굳이 C+ 받은 과학 선생님하고 면담할 건 없잖아? 엄마가 나였어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며 다음 면담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 면담은 담임 선생님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아무리 길어도 15분 내로 끝나는 일반 면담과 달리, 교실로 들어간 엄마는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복도에서 홀로 엄마가 나오기만을 기다린지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제는 아예 옆 반 담임 선생님까지 합세하여 엄마와 2대 1면담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창 밖으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고, 교실 문에 난 창문으로 들여다본 엄마의 얼굴은 몹시 심각했다. 맙소사,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고역일지는 안 봐도 훤한 일이었다.
면담은 해가 다 져버린 뒤에야 끝이 났다. 나는 굳은 얼굴로 주차장으로 향하는 엄마의 뒤를 말 없이 쫓았다. 나는 일부러 운전석 뒷자리에 앉았다. 조수석에 앉았다가는 엄마의 화난 얼굴을 바로 옆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무서웠다. 선생님이 엄마한테 무슨 말을 했을까?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집으로 가는 내내 차 안엔 차가운 정적이 맴돌았다.
“하.”
한참 뒤, 엄마의 짧고 무거운 한숨이 고요를 몰아내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비수같은 말들. 우리 학교는 학비가 무척이나 비쌌다. 단순한 일반 대안학교가 아닌 국제학교였기에 커리큘럼과 교과서를 모두 미국에서 들여와서 학비가 비싼 것이라고 담임 선생님은 학기 초에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한 학기에 600만원. 그 때 당시엔 막연하게 학비가 비싸다고만 생각했지 이것이 얼마나 큰 돈인지 나는 정말 몰랐다. 현재 대학생인 나의 한 학기 학비가 180만원이니 이제야 조금 실감이 된다.
그래서인지 학교엔 부잣집 친구들이 많았다. 나름 평범한 축에 든다고 생각되는 친구들도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초대 받아 놀러갔던 친구 집 부엌이 우리 집 거실만한 것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그에 비해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빠와 엄마는 작은 사무실에서 함께 사업을 했다. 처음 시작할 땐 나름 호황을 달렸던 사업이 커다란 사기 한 번에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며칠 동안 밖에 나가 있던 아빠가 집에 돌아왔다. 방에서 달려나가 인사하려던 찰나, 엄마와 아빠의 대화가 들려왔다.
“잡았어?”
“3일 동안 집 앞에서 죽치고 있었는데도 안 보이더라.”
“그러니까 내가 그 회사랑 계약하지 말라고 했잖아.”
두런두런 들릴 듯 말 듯 들려오던 말소리는 어느새 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꼭 닫았다. 듣고 싶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엄마아빠가 알아서 하겠지. 엄마아빠는 어른이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어른이라고 해서 뭐든지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엄마와 아빠는 매일 늦게 들어왔다. 특히 엄마는 거의 항상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나는 지친 엄마의 얼굴을 모른 척 했다. 엄마는 어른이니까, 엄마는 엄마니까.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고, 집은 숨 쉴 수 없는 끔찍한 공간이 되었다. 나는 점점 집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학교는 내 숨통을 틔워주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가족이 싫고 징그러웠다. 날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친구들 뿐이었고, 그런 친구들이 있는 학교를 사랑했다. 학교를 가는 매일이 너무 즐거웠고 방학이 최대한 늦게 찾아오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내가 이토록 열렬히 학교를 사랑하는 것에 비해, 선생님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큰 존재감을 가진 아이는 아니었다. 2학년이 되고 나서부터인가, 낮은 성적을 이유로 엄마는 내게 학교를 옮길 것을 요구했고, 그 때마다 나는 눈물로 호소하며 부모님과 크게 싸웠다. 부모님 입장에선 사업이 어려워 집도 더 작은 곳으로 이사가는 상황에 비싼 학비의 학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거액을 들여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받아도 모자랄텐데 항상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만 받아오는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사실 여기서만 몰래 말하자면 난 단 한 번도 내가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론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정확히 평균! 이었다. 뭐, 평균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진짜 열심히 할게요. 계속 다니게 해주세요.”
그렇게 눈물로 시간을 끌며 학교를 다닌지가 벌써 3년. 면담일에 선생님을 만난 엄마는 마치 화산이 용암을 분출하듯 폭발해버렸다. 공부하라고 비싼 돈 들여 학교 보내놨더니 남자에 미쳤냐며 엄마는 길길이 날뛰었다. 선생님들이 내가 최근 남자인 친구들 때문에 교무실에 여러번 불려갔던 것을 엄마에게 전한 모양이었다. 내가 남자애들을 졸졸 쫓아다닌 것도 아닌데 남자에 미치다니! 나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여기서 뭐라 반박하면 엄마가 화내는 시간만 더 연장하는 꼴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소리를 질렀다.
“선생이 그러더라, 부모한테서 사랑 못 받아서 남자애들하고 붙어다니는 것 같다고!”
엄마는 자기가 선생한테 그런 말을 들어야겠냐며 귀가 따가울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머리가 띵했다. 대체 어떤 선생님이 엄마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진짜로 선생님이 저렇게 말했을지, 아니면 엄마가 이렇게 오해해서 들은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완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내게 관심가져주고 신경 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친구들과는 관심사가 전혀 달랐고, 내가 전혀 관심없는 얘기들을 자기들끼리 웃으며 나누었다. 나는 함께 있어도 늘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친구 이상으로 날 신경 써주는 것이 좋았고, 그래서 남자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던 것이 맞았다.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이 맞는 말 했는데 뭘 그래!”
나도 질세라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물론 속으로만. 실제로는 엄마에게 맞서 싸울 용기 따위 없었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엄마가 제 풀에 지쳐 화내는 것을 멈추기를 그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런 일에 상처받아 우는 것이 억울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엄마 때문인데. 엄마가 너무도 미웠다. 엄마가 싫었고, 말을 섞는 것조차 꺼려졌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정말 나는 아무 잘못도 없었을까? 매일 새벽 어두운 표정으로 퇴근하는 엄마 어깨를 주물러줬다면, 아빠와 싸우고 한숨 쉬는 엄마를 위로해줬다면, 그러면 그 때의 우리는 조금 덜 상처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