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 대가리?

by 파란 해밀



2021. 01. 26.



"엄마"
"응?"
"이름 좀 바꿔주세요"
"이름을? 왜?"
"애들이 자꾸 놀려요"
"뭐라고 놀리는데?"
"나보고 무시("무"의 방언) 대가리라고 해요"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치고 막 한숨을 돌리려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던 큰 녀석이 심각한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아들 이름의 첫 글자가 무자 돌림인데 무로 시작하는 말로 별명을 지은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걸쭉한 표현을 또래 아이들이 재미있게 지었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는데 녀석의 얼굴은 보통 진지한 게 아니다.


표정만 보면 당장에라도 동사무소로 달려가 주민등록등본에 적힌 제 이름에서 "무"를 벅벅 지워버릴 태세다. 가뜩이나 볼이 오동통한 녀석의 얼굴은 골이 잔뜩 나서 더 부풀어 있었다. 학교를 파하고 내가 퇴근할 때까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때까지 분이 삭지 않았는지 강력하게 개명을 요구하는 녀석의 모습이 우스웠지만 그렇지 않은 척했다.



© ninjason, 출처 Unsplash



"근데 어떡하지?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럼 어떻게 해요?"
"에이~~~, 나무야"
"......"
"토끼야"
"......"
"사과야"
"......"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뜬금없이 이것저것 주워섬기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때?"
"예?"
"엄마가 너를 나무, 토끼, 사과...... 이렇게 부를 때마다 너는 어떻게 됐어?"
"......?"
"엄마가 아무리 너를 그렇게 불러도 무빈이가 나무나, 토끼, 사과가 되지 않는 것처럼, 친구들이 너를 무시 대가리라고 불러도 네가 무시 대가리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냥 무빈이는 무빈이 그대로야. 그러니까 그런 말에 화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친구들이 장난으로 그러는 거야"

녀석은 잠깐 동안 눈을 굴리며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마음을 굳혔는지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내 말을 완전히 다 이해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이후로 이름을 바꿔달라는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 stevepb, 출처 Pixabay



살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크고 작은 오해나 억울한 일들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말했는데도 상대방은 저렇게 받아들이는가 하면, 나는 "1"이라 했는데도 "ㄱ"으로 굴절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모든 것을 생선 가시 발라내듯 일일이 헤집어 정리하고 가려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매번 상처 받고 힘들어 하기보다는 건강한 자존감으로 취할 건 취하고, 가릴 건 가려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랐는데 아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가보지 않은 길을 묻는 자식에게 때로는 몇 발자국 앞을, 때로는 저 멀리 손끝의 길을 귀띔해주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인데, 그 길의 무엇을 가치로 할지 고심하는 것도 부모의 무거운 몫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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