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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국가에서 다자녀 엄마가 되다

어쩌다 보니 다자녀 엄마가 되었다

by 이사비나

2015년 청양띠의 해, 첫째를 낳았다.

그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4명. 전년도보다 0.03명 늘며 2000년대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적어도 한 명은 낳던 시절이었다. 조리원 동기들은 흩어져 살면서도 “둘째를 낳아야 할까 말까”를 끝없이 고민했고, 이미 둘째를 낳은 선배 엄마는 “둘은 꼭 있어야 한다”며 강력히 권하곤 했다.


2020년, 나는 계획을 바꿔 둘째를 낳았다.

그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84명. 1.0도 안 되는 수치였다. 나라는 아이를 낳으면 환영한다는 듯 엄청난 예산을 예비 부모들에게 퍼주었다. 첫째 때는 출생신고 후 쓰레기봉투 한 장이 전부였다. 둘째를 낳으니 현금 지원, 출장 산후도우미, 유축기 대여까지 받을 수 있는 게 많았다.


나라에서 주는 혜택이니 보건소를 방문해 산모수첩을 제출하고, 영양제, 엽산을 받았다. 유축기까지 뿌듯하게 대여하고 보건소 언덕을 내려오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돈 때문에 아이를 낳은 게 아닌데, 왜 이 나라는 ‘돈을 줄테니 아이 좀 낳아~' 하는 걸까. 아이 낳으면 영양제고 엽산이고 임산부 배려 주차증까지, 유축기까지 대여해줄게! 그럼 아이 낳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게 아이를 둘이나 낳기로 결정한 나로서는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출산'보다 출생'

아이 둘을 낳아 키워보니, 낳는다는 의미의 '출산'보다 아이의 '삶', 말 그대로 '생(生)'이 더 중요했다. 태어난 아이와 내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생이 (내가 80대에 죽는다면) 대략 50년쯤은 될 텐데, 내가 받은 나라의 지원들은 아이가 이제 막 걸을 때쯤 그 쓸모가 다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지역에서도 아이 2명을 둔 집을 ‘다자녀’로 인정해 혜택을 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뜻밖의 ‘다자녀 부모’가 되었다. 아이를 많이 낳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특별한 계획도 없었다. 그저 어쩌다 보니 다자녀 엄마가 된 것이다. 첫째를 낳았을 때는 지나가면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라는 동네 할머니들의 오지랖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제는 둘째도 낳았냐는 말을 듣는다. 다자녀로 혜택을 받았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정부 돌보미 무료 지원이었다. 두명이면 맡기고 마음편히 일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다자녀라서 혜택을 많이 받는 것 같아도 늘 힘에 부치는 일상이다. 아이가 없는 나라라는데 노 키즈 존이 있다. 아이가 귀하다는데 4세 고시, 7세 고시, 내신 등급, 입시까지 아이의 오늘보다 미래를 걱정하며 살게 만들고 있다. 공교육 중학교 교사로서 점점 활기를 잊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앞으로 나의 아이의 미래도 염려되기 시작한다.


대학, 취업, 결혼, 출산, 육아라는 삶의 과업을 미션 클리어하듯 살아가는 우리나라에서 난 모든 과업을 잘 마쳤다. 그런데도 아직도 살 날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뭔가 잘못된 족보를 받아 공부해 온 느낌이 든다. 이 미션을 해결해 온 부모들은 다시 또 자녀를 통해 그 삶을 반복하려 한다. 나 역시 아이를 그렇게 키우려 했다. 대학 한번 가봤다고 남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잘 준비해주면 아이도 나처럼 모든 미션을 무사히 마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계획에는 없었던 아이의 ADHD 진단 이후, 우리의 육아는 조금 더 어려워졌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 내 아이의 어려움은 곧 나의 어려움이 된다는, 그런 현실도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


우리는 결국, 한국을 떠나 키워보기로 했다.

아이들의 천국이라 불린다는 캐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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