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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만이 길이 아닌 나라에서

캐나다 입시와 우리나라 입시의 온도차

by 이사비나

"장래희망이 뭐야?"

"의사요."

"변호사요."

"체육 선생님이요."


중학교에서 생활기록부를 쓰기 위해 아이들에게 꼭 물어봐야 하는 질문 중 하나다. '진로희망'에 대해 기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10여 년 중학교 아이들을 만나고 졸업시키며 느낀 것은 꿈을 이루는 아이들은 한 반에 5명도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원하는 장래희망은 대부분 공부를 해서 자격을 얻거나 소수의 몇 프로만 가지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교사가 좋다고 해서 어릴 때부터 늘 장래희망에 '선생님'이라고 적어온 사람으로서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든 될 거라고 강하게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마흔을 앞둔 지금, 사람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영어교사의 꿈을 이루었지만, 영어교사이면서 엄마이고,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자, 여성이다. 그리고 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에 캐나다에서 긴 여행을 하는 여행자다. 장래희망은 직업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국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늘 물어보곤 한다.

"어디 고등학교 가고 싶어?"

"00 고등학교요. 내신 1등급 받아야 해요. 거기는 공부 못하는 친구들만 온다고 해서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에도 전략적으로 고민을 해야 했다. 3년 뒤면 수능을 봐야 하고, 당장 고등학교 1학년부터 진로를 정해 생활기록부를 그 진로에 맞춰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상대평가 지옥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존율이 높은, 자신이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골라 가려고 애를 썼다.



캐나다의 입시는 어떨까?


이민을 온 언니들과 친해졌다. A언니의 아이는 대학을 갔고, B언니의 아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고3이 되었다. 캐나다에 있는 한국 엄마들은 여전히 아이들의 대입에 관심이 많다.

"캐나다에서는 대학을 어떻게 가나요?"

"여기는 고3 성적만 내신으로 들어가. 나머지는 아이가 어떤 것에 관심이 많고 클럽을 무엇을 했고, 봉사활동이나 스포츠, 다방면으로 리더십도 있고 지원한 과와 이 아이가 보여주는 포트폴리오가 잘 맞는지 보고 붙여줘. 근데 한국에 비하면 엄청 쉬운 편이지. 대학은 다 가긴 가. 이렇게 공부를 안 하고 가도 되나 싶을 정도야."


B언니에게 물었다.

"00 이는 고3인데 학교 다녀오면 뭐 하나요?"

캐나다에는 사교육이 많지 않아 물어보았다. 대학을 가려면 그래도 과외나 학원 정도는 다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3시 30분에 집에 오면, 그냥 방에서 폰 하고 친구랑 이야기하고 공부도 좀 하고 그러지~"

딱히 스케줄이 짜여 있지 않은 고3 아이의 일상이 참 신기했다.


캐나다 부모들의 아이들에 대한 기대


세모의 친구는 5남매 중 막내다. 이 친구의 엄마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첫째, 둘째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첫째는 딸인데 농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농장 동물들이 너무 좋대요."

"둘째는요?"

"둘째는 트럭 고치는 걸 좋아해서 수습생으로 배우고 있어요."


캐나다 부모들과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느껴지는 게 있다. 아이들의 진로 안에 자신의 꿈은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기대조차도 말이다. 그저 아이는 아이의 삶 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 늘 느껴진다.


모두가 의대를 향해 달리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아이도 장래희망에 목수, 배관공, 전기기술자, 트럭 정비사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실제로 사회에서 꼭 필요한 직업들이며 누군가는 그 몫을 해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반에서 꼴찌 타이틀을 뺏긴 적 없었던 아이도 대학을 들어가야만 될 수 있는 직업을 쓰곤 했다. 또는 유튜버.


캐나다에서 이런 직업 문화가 가능한 이유는 꼭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 점도 한 몫한다. 세모는 사립학교를 다니는데도 부모의 직업이 다양하다. 크레인 운전사, 영상 제작자, 사업가, 목수, 배관공, 경찰 등.


"한국 아이들 불쌍해."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한국에 살면 어쩔 수 없다'라는 쉬운 말로 아이들을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밀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우리 부모에겐 선택권이 없는 걸까?


"세모야, 넌 꿈이 뭐야?"

"몰라. 지금은 축구 선수, 하키 선수, 엔지니어 중에 고민 중이야."


남편은 말한다.

"축구 선수, 하키 선수는 못해. 너무 치열해. 엔지니어도 대학을 가야 하는데... 될까?"

남편은 ‘될 수 없으면 꿈도 못 꾼다’고 했지만, 나는 달랐다. 세모가 오늘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자신에게 '미래'가 주어진다는 상상만으로 행복한 아이의 모습만으로도 좋았다. 꿈은 되는 대로 꾸며 살아가는 것이니까.



한국에서 아이들이 불쌍해 보이는 이유는, 꿈을 꾸는 방식마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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