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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Oct 31. 2024

원숭이의 엄마 사랑

아이가 처음 그려준 내 모습


요즘 말문이 터진 둘째가 재잘재잘 내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든다.


보통 맥락 없이 혼자만의 상상 이야기, 결투, 뜬금없는 동요대회...


떼굴 떼굴 떼굴 떼굴 도토리가 어디서 왔나~

노래를 부르다 혼자, 어디가 웃겼는지는 모르겠는데 깔깔깔 웃는다.

빨주노초파남보 오늘은 어떤 색일까?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을 비장하게 부르기도 하고 

알에서 나온 '혁거세'를 꼭 '혁바세'라고 한다. 아가야, 엄마가 박씨란다.ㅋㅋㅋ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는 역시,




엄마, 나랑 같이 좀 놀자.





엄마, 내가 병사들을 다 준비 해났어, 얼른 같이 놀자.

엄마, 나랑 결투해요, 레이저 칼싸움해요!

우리 꼭꼭 숨어라 하자, 

포켓몬 카드놀이 할까? 펭귄 놀이할까? 


작년까지만 해도 보드게임 규칙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올해 초부터 조금씩 그림 맞추기 놀이나, 피자 만들기(물론 덧셈˙뺄셈을 못해서 피자 빨리 만들기 놀이로 바꿔서 한다), 펭귄 균형 잡기 놀이 같은 것을 곧잘 한다. 아직 복잡한 보드게임은 못하지만(*삼국지나 엉덩이 탐정 추리 보드게임ㅋㅋ) 같은 그림이나 자리를 기억하는 놀이도 점점 기술이 늘고 있다. (포켓몬 메모루트, 코잉스 등등) 


몸으로 뛰고 뒹굴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가 이제는 제법 집중해서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이 귀엽다. 






장난감 통에 들어가서 놀던 아이가 드디어 보드게임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같이 놀자는 말만큼 많이 하는 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엄마, 사랑해.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이렇게 말하는데 안 놀아줄 수가 없다. 나랑 놀기 위해서 제법 기다릴 줄도 알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뽀뽀도 마구 해준다. 그러다가 요즘 폭발한 그림 그리기. 엄마를 그려준다고 하며 집중하며 열심히 그린다. 


▷ 선율아, 엄마 머리 위에 버섯 세 개는 뭐야? 왜 머리에 버섯이 났어?
▶ 아니야 엄마, 엄마는 이쁜 공주님이니까 내가 왕관을 그린 거야.
▷ !!!





이렇게 보니 엄마를 정성스럽게 그려주긴 했네!





아직 자기 이름을 못써서 선율이란 이름 대신 시인, HOT, lㅇ ㅐㅁ 같은 글자로 보이는 형태를 자주 쓰지만 여태껏 그린 그림들을 좌르륵 놓고 보니 나를 그린 그림은 확실히 달랐다. 일단 몸통에 치마 같은 걸 입혀주기도 했고(몸통으로 보이는 게 있다!) 머리에 버섯 같은 왕관도 씌워주고 속눈썹을 한쪽 눈에 무려 세 개씩이나 올려줬다. ㅋㅋㅋ


아, 그리고 아래에 추가해 준 하트까지.


다양한 색을 사용해서 색칠도 하려는 만큼 아이의 그림, 색칠놀이가 마구 폭발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매일 나를 그리겠다는 아이 말에, 얼마 전에 글로도 쓴 하브루타, 《원숭이가 된 여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재잘재잘 말이 늘수록 사랑을 표현해주는 아이가 기특하면서도 내 기분을 맞춰주려 더 지나치게 사랑을 표현해주는건가,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건 그래도, 좋아! 여전히 사랑스럽기에 어화둥둥 안아주는 것 뿐이지만. 




원숭이가 된 여자

메마른 사막에 한 부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은 하나 같이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와 다름없는 벌거숭이 모습으로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사막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그들을 보고 소리쳤다. 
 "내일 예언자 모세님이 이곳을 지나가신다오. 당신들이 그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간청하면, 당신들의 생활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오."
이튿날 예언자 모세가 찾아왔다. 그들 세 사람은 그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간청했다.
 "너희들은 나쁜 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운명은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애원하자, 모세는 그들의 가난함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샘이 한 군데 있다. 마침 일찍 해뜨기 전에 그곳에 가서 목욕하는 거다. 단, 너희 세 사람은 한 사람씩 다른 날에 목욕을 해야 한다. 목욕을 하는 동안 너희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모세는 자기 갈 길을 갔다. 이튿날 아침 그들 세 사람은 샘으로 갔다. 누가 먼저 목욕을 하는가를 두고 서로 다툰 끝에 어머니가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녀는 목욕을 하면서 아름다워지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그녀가 샘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한 명의 고관이 마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갔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남편을 무시하고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여자는 자신이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이튿날, 아버지와 아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샘으로 갔다. 
 아버지가 목욕을 할 차례였다. 그는 아내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아내가 긴 꼬리를 가진 원숭이로 벼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날 아침 눈을 뜬 고관은 자신의 옆에 긴 꼬리원숭이가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기겁을 하고 놀라 원숭이를 밖으로 내쫓았다.
 여자는 달리고 달려서 사막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세 식구는 모래 언덕 위에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사흘째 날 아침 아들은 혼자 샘에 갔다. 그는 목욕을 하면서 어머니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결국 세 사람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마지막, 다시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린 아들이 효자 같기도 하지만 사실 아들이 왜 그런 소원을 빌었을까? 닫힌 듯 열린 결말로 도돌이표로 돌아오게 한 아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찜찜하고 행복한 해피엔딩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이야기. 아들 역시 같이 벌거숭이로 (무지의 상태로) 지냈지만 엄마와 아빠와 셋이 함께 살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을 거고, 그게 아들의 세상 전부는 아니었을까. 아들이 본 세상의 전부는 사실 '벌거숭이 엄마, 아빠'가 온 우주이자 전부였을 거다. 조금만 시야를 들어 메마른 사막을 벗어나 넓게 펼쳐진 세상을 봤다면 아들의 선택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2022 시에나국제사진상 동물 부문 3위 《마지막 포옹》 siena-photo-awards-2022



원숭이가 된 여자, 원숭이의 아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보자마자 충격적이었던 사진 한 장이 생각났다.  

'마지막 포옹'이란 작품. 



표범에게 목덜미가 물린 엄마 개코원숭이를 아기 원숭이는 죽은지도 모른 채 꽉 끌어안고 있다. 올림바라는 이 표범은 자기 새끼에게 줄 먹이를 위해서 원숭이를 사냥했다고 한다. 아들을 안아주고 싶지만 축 늘어져서 갈 곳 잃은 두 손은 아이를 감싸 안아줄 수 조차 없다. 허공으로 늘어진 손, 엄마 원숭이는 원숭이들만의 언어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어서, 도망가, 너라도 살아!
끝까지 도망가서 일단 살아야 해. 




아니, 이런 이야기조차 나눌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원숭이 모자는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나를 그려주고 나만 그려주겠다는 아이에게 뿌듯하고 좋으면서도 갑자기 원숭이 모자의 사진이 생각났던 건 왜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아이를 보호하고 키우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는 걸까. 아이가 보는 세상이 내 가전부인게 좋고 뿌듯하고 말랑말랑하다가도, 또 전부가 되질 않길 바란다고 하면 좀 이상한 걸까. 엄마의 우주가 한없이 넓고 따스하고 전부이지만 그래도 '네가 살아가는' 네 세상이 있고 그게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가르쳐주고 싶다.



▷선율아, 엄마 말고 이제 다른 것도 한 번 그려줘 봐. (너무 생각이 많은 엄마인가, ㅎㅎ) 엄마를 그려줘서 고마워. 선율이가 좋아하는 건 없어? 
▶응 엄마, 아주 많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거, 아~~ 주 많아.
근데 나는 그중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만 그려주고 싶어.




누가 모성만이 대단하다고 했던가! 이토록 나를 사랑해 주는 든든한 존재가 내 곁에 있는데, 나보다 나를 더 포용해 주고 사랑해 주는 아이들. 내가 할 일은 좋은 거울이 돼주고 기다려주는 것뿐이구나.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그때도 손을 잡아주는 것뿐이구나. 어떤 순간에도 나를 꽉 끌어안고만 있을 내 아이들을 떠올리니 갑자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곁을 떠나 훨훨 날아서 다시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그래도 엄마 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 원숭이도, 원숭이가 된 여자의 아들 마음도 나는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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