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졌다.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날의 싸움도 마찬가지였다. 정희가 폭발하자 그는 말없이 일어나더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집을 나갔다. 정희는 홀로 남겨졌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아닌, 수화기 너머의 낯선 목소리가 그의 상태를 알려왔다. 그날 이후 정희의 기억 속에는 검은 상복을 입고 끝없이 손님을 맞는 자신의 모습만이 흐릿하게 떠돌았다.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넨 것도 같았지만, 그 말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어떤 얼굴로 그녀에게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은, 잊히지 않는 그림자처럼 그녀의 마음속에 눕혀져 있었다.
다시 정희는 집으로 돌아왔다. 벽에 걸지 않고 내려놓은 채 방치된 커다란 사진이, 아무 말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그가, 홀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물이 터졌다. 정희는 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아무도 정희의 눈물을 볼 수 없는 텅 빈 그곳에서 마침내 마음속 깊은 곳에 쌓였던 슬픔을 폭발시켰다. 그 모습은 단순한 울음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온 끔찍한 신음처럼 들렸다. 그것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 괴성에 가까운 숨비질이었다. 바닥이 없는 파도가 허우적거리는 정희의 목구멍을 조여 고통을 주는 모습. 정희가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를 보여주었다.
정희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부터 소리까지, 왜곡되기 시작했다. 감각이 감정을 이겨내지 못해 만들어진 착시일 것이다. 침울하게도 정희의 추억들은 너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무게는 무엇 하나 손에 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언제나 깨끗이 정돈되어 있던 주변은, 이제 사람이 찾지 않는 듯 소박한 먼지를 내렸다. 공기마저도 느리게 흐르며 그녀의 존재를 짓누르는 듯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희는 그 자리에서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그녀의 슬픔을 반영하듯, 잔잔한 흐름 속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정희야 나 미간에 주름이 생겼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는 심술이 난 아이처럼 가득한 불만이 묻어 있었다. 안방 화장대에서 머리를 말리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정희에게 투정을 부렸다.
정희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눈을 떴을 때,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소파 위에 누워 있던 자신의 몸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흩어진 물건들과 오랫동안 쌓여있던 먼지들이 그녀를 맞이했다. 서둘러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정희의 꿈이었다. 주름에 대한 그의 투정은 오래전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허탈했다. 그리곤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정희는 그때 그에게 주름에 관한 자신만의 생각을 말했다.
“주름은 인생의 증거야. 당신이 걸어온 길과 선택의 흔적이 담겨 있지. 그러니 그 주름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는 정희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눈빛을 보내며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지금도 실감이 날정도로 호탕했다.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자, 왜 자신이 청소하는 것을 좋아했는지, 왜 그를 사랑했는지,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리고 그 넓은 공간 속에서, 점점 작아져 있던 자신의 모습이 느껴졌다.
여전히 정희는 그와 함께한 공간에서 한 뼘도 벗어나지 않았다. 홀로 그 공간을 지키며, 머물렀다. 꿈을 꾼 다음날 정희는 청소를 시작했다. 작은 먼지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오직 청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일주일 내내 청소에 온 힘을 다했다. 그 노력 덕분인지 정희의 공간은 조금씩 작아졌고, 시간의 무게도 점차 가벼워졌다.
그러나 아무리 청소를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가 남긴 흔적들, 그와 함께했던 순간의 감정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깊은 그리움이다. 청소로는 지울 수 없는,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박힌 상처와 기억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이 있다는 것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그녀가 그에게 말해주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