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 멀어질수록 통증이 거세게 밀려왔다. 온몸이 무겁고 뻣뻣해졌다. 발걸음은 납덩이를 끌고 가는 것처럼 느려졌고, 팔목은 시리도록 아팠다. 그가 움켜쥐었던 자리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멍이 올라오는 느낌이 피부 아래에서 스멀거렸다. 온몸을 휘감는 피로와 함께, 감정의 잔해들이 그녀를 온전히 놔두지 않았다. 쓰러질 것만 같은 순간이 이어졌다. 있는 힘을 다해 한 손으로 가방을 잡고, 다른 손으로 아픈 팔목을 감싸 쥐며 한걸음씩 내디뎠다. 하지만 그녀의 피난처는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정희가 숨어 있었던 안개에서 벗어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했지만 정희는 그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더 신경 쓰였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주었으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바람은 사정없이 얼굴을 할퀼 때마다 두려워하는 눈빛이 나타났다. 그럴수록 정희는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아무도 그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해야만 했다. 홀로 묵묵히 두려움에 떨면서 정희는 앞으로 나아갔다. 정희는 끊임없이 내리치는 바람을 뚫고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다. 발끝이 가벼운 땅을 밟을 때, 마치 그녀의 발걸음이 땅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주위의 소음이 잠시 멈춘 듯, 그곳은 고요함에 휩싸였다. 그때서야 정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며칠 동안은 육체적인 통증에 머물렀다. 팔목에 남은 자국은 곧 멍으로 번졌고, 손목을 조금만 움직여도 쿡쿡 쑤셨다. 팔을 들어올리기가 힘들 정도로 아픔이 깊이 배어 있었다. 고통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매일 조금씩 더 깊숙이 스며들었다. 육체적인 것은 차라리 감당하기 쉬웠다. 그녀를 더 괴롭힌 것은,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었다.
밤마다 목구멍에 핏덩이가 걸린 듯 답답했다. 말문을 열려고 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올 듯 했다. 상처를 꺼내 보이는 순간, 그 고통이 다시금 살아 꿈틀거리며 그녀를 옥죄어 올 것만 같았다. 무력감과 두려움, 그리고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절망감이 그녀를 삼켜 버릴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만약 누군가에게 하소연한다면? ‘왜 그런 사람을 만났느냐’는 비난과 함께 또 다른 상처만 안겨줄 것이 분명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파고드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그녀를 짓눌렀다.
세상은 상처 입은 자를 향해 쉽게 손가락질을 한다. 마치 자신들은 완벽한 듯이. 정희는 그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마치 벌거벗겨진 채 광장에 내던져진 기분. 차라리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은 그녀의 유일한 방어벽이었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작은 피난처.
정희는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날에 갇혀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을 왜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상처받은 이들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다는 사실도. 외부에서 밀려오는 명백한 위협보다,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이 더 큰 문제였으니까.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감옥의 열쇠를 잃어버리고 만다.
물론 정희의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녀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를 인식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고, 그녀가 주목을 끌었던 사람도 아니었다. 더욱이 정희는 침묵을 지켰으므로, 아무도 상황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않았다. 무관심으로 덮일수록, 정희는 오히려 편안함을 제공받는 것 같았다. 그 만큼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책과 수치심은 점점 더 짙어졌다.
매일 이어지는 자책은 그 자체로도 괴로운 일이었다. 어떻게든 이 상태를 극복하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과제는 언제나 마음속에 무거운 짐처럼 얹혀 있었다. 그녀가 그 짐을 덜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상처를 부정하고 숨기려 했기 때문이었다.
방어든 공격이든, 그것은 나중 문제였다. 일단 피해자라면 부인하기 어려운 약자일 수밖에 없으니. 약자, 고통이 팔목에서 가슴까지 퍼지고, 어느새 그것이 일상이 되는 동안에도, 그녀가 입을 열지 못했던 이유였다. 숨어야만 상처가 덧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그녀도 그저 견디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그녀는 하루의 대부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반드시 상처가 남기는 깊은 흔적을 보고 그 원인을 묻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질문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액션이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혹은 어떤 영화 같은 전개가 발생했는지 그 스토리를 더 궁금해 한다. 수많은 사연이 얽히고설킨 순간 한 사람의 상처는 단지 유사성으로만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서 새로운 형태의 고통이 만들어진다. 자신이 가진 것과 비슷한지 다른지만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는 모두 자기식대로 해서되어 버린다. 그 평범한 전개가 그녀가 상처를 숨기는 이유였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 협력해왔지만 실은 여전히 고통을 나누는 법을 모른다. 단지 문제를 없게 만드는 게 그래서 협력이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으니까. 그러니 치유보다 인내와 용서를 쉽게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아픔을 감추며 살아간다. 결국 자신의 문제이니까.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정희는 나고 자랐다. 그녀가 갖게 된 불안은 그 속에서 만들어져 유래된 오래된 관습이었다.
사실, 누구라도 정희의 마음을 아픔을 상처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감각은 서로를 완벽히 연결하지 못하기에, 다른 이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공유할 수 없고 그 감정에 대해 깊이 느끼기 어렵다. 그렇기에 정희의 경험이나 정서적 배경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리 자신의 한계를 적절하게 변명해 두었다. 자신의 손가락에 찔린 작은 바늘 상처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보다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비유. 그 말이야말로 침묵을 변명해주는 명언이다. 비유가 가리키는 분명한 사실은 누구나 타인의 아픔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희는 차가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손등을 돌려보았다. 그 위에 찍힌 마디마디에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단순히 피부 아래의 흔적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희의 마음속에서 결코 아물지 않을 고통의 상징이었다. 그녀를 지탱하는 모든 것이 그 상처 위에 놓였다.
매일 아침, 거울을 바라보며 마주하는 자신은 과거의 흔적을 떠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불가해한 감정의 그늘은 그녀를 점점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끌어내렸다. 정작 숨어 있는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라는 현실. 정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