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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에..

매일의 마침표를 잘 찍으며...

by 제이쌤

냉장고를 정리했다.

거짓말 같은 사고 소식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냉장고로 손이 갔다. 냉장고 안쪽에 내 반찬통이 아닌 찬기가 보인다. 엄마 반찬통이다. 해서 주신지 좀 된 북어포조림. 상하진 않았지만 우리 애들은 잘 먹지 않는 반찬이라 더 두어도 먹을 것 같지 않아 죄송한 마음 뒤로하고 버리기로 마음먹는다. 반찬을 쏟아 버리며 생각했다. 정리하며 살아야겠다고.


대학졸업 후 2년. 철도 들기 전에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 부모님 품이었다. 철도 안 든 스물여덟 살에 엄마가 되었고, 이제 좀 부모 마음이 어떤 건지 알아질 만한 서른한 살에 쌍둥이를 낳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 부모가 나를 이런 마음으로 키웠겠구나 깨닫는 절절한 순간순간들에 세 아이를 키우느라 여력이 없었다. 부모님께 도와달라고 힘들다고 손을 내밀지 않는 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였다.


나중에 부모님 근처 가서 살면서 병원에 더 자주 다니시게 되면 병원비도 내드리고 병원도 모시고 다니고, 자주 모시고 밥도 사드려야지. 생각만 하면서 살았다. 내년이면 이제 아이들이 모두 중고등 학생이 된다. 내 사업으로 부모님 마음 편히 드실 수 있는 밥 한 끼 사드릴 만큼의 돈도 벌게 되었다. 나중에 말고,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번도 제대로 못해본 작은 효도라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주 못가더라도, 엄마 아빠 두 분 이서는 안 시켜드실 피자 햄버거 치킨도 한 번씩 시켜드리고, 필요할만한 영양제도 시켜 보내 드려야지.


아침에 엄마랑 통화하다 비싼 수제 햄버거 드시라고 시켜드렸더니 너무 느끼하더라. 그냥 싼 햄버거가 낫다고 웃으셨지만 좋아하셨다. 늘 애 셋 키우느라 전전긍긍이던 큰 딸이 사업도 잘해나가고 애들도 다 초등학교를 졸업시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나보다 싶어 그런 걸 거다.


그 비행기에 탄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런 삶의 마지막 순간을. 며칠 여행 다녀올 거라고 미해결 된 많은 일들을 당연히 남겨두고 왔을 것이고, 며칠만 부탁한다고 이런저런 일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맡겨놓기도 했을 것이고, 여행 다녀와 새로 시작할 일들을 준비해 놓기도 했을 것이다. 수많은 추억과 현재와 미래가 그 안에 묻혔을 것이다. 그걸 다 가슴에 묻어야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황망할까.


마지막을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유한한 삶이다. 지금 지나는 길이 비록 평지가 아닌 험난한 자갈길이라도 비가 쏟아지는 날씨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며 묵묵히 걸어내보려 한다. 내 유한한 삶의 마지막이 평지 위일지, 이보다 더한 험난한 진흙탕 위일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게 삶이다.


먼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잘 살아낸 매일이 쌓이면 어느 날엔가 휴 하고 큰 숨 한번 내쉬며 조금 편안해진 길을 산뜻하게 걷고 있겠지.


그렇게 매일의 마침표를 잘 찍으며 정리하며 살다가 혹시 내 삶에서 예측하지 못한 마지막을 만나게 되더라도 너무 애달프게 마지막 숨을 쉬지 않을 수 있겠지.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차마 밥이 넘어가지 않는 날이다. 모두 평안하게 떠나길 기원하며,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내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 보자고 다짐해 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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