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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모습으로 견딜 2026년.

멀리 돌아온 길

by 제이쌤

<수험생을 응원합니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층간소음등을 조심해 주자고 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안내문을 보고 큰 딸이 말했다.


" 아, 이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네. 시험 하나 보는 게 뭐라고 온 나라가 떠들썩한 지."


이제 이 시험이 끝나고 나면 본인 차례가 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두려움, 일종의 반항심등이 섞인 한탄이라는 걸 안다.


특목고에 진학한 덕분에 조금 더 치열하게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쉽지 않은 2년을 지왔다.


줄 세우기 교육의 폐해로 우리 세대의 자존감이 모두 박살 나 있음에도, 이러저러한 진통을 겪으며 변화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아이가 겪는 교육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옆에 있는 친구가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는 등급 전쟁을 겪으며 아이는 우리 교육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것으로 아이가 공부를 소홀히 할 핑계를 찾을까 하는 비좁은 엄마 마음에 같이 토로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여주는 정도의 동의를 하기도 했었다.


2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초등 6년에 비해 중등 3년은 금방 지나가는 것 같더니, 고등은 이렇게 2년이 끝나고 수험생이 되니, 중학교보다도 더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엄마 마음 같지 않게 공부를 소홀히 하기도 하는 모습도 보여도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에 잔소리도 조심스럽기도 했다. 엄마 아빠 둘의 문제로 혼란스러운 상황까지 만들어줬기에 더 할 말이 없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아이는 흔들리면서 커나갔다. 온실 속에 화초처럼 키우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모든 시련과 비바람을 할 수 있다면 다 막아내주고도 싶었다. 그 모든 게 환상적이라는 것도 알았으며, 아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이가 가진 색깔대로 자라나야 함도 깨달았다. 아이와 함께 나도 자랐다.



일요일 아침 일찍 남편과 강아지와 함께 나와 청남대를 다녀왔다.


그림 같은 가을날이었다. 이제는 고3인 큰 아이는 물론, 중학생인 쌍둥이도 나름 시험을 준비한다고 외출길에 따라나서지 않는다.


이렇게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어쩌면 각자의 휴일을 보내고 있었을지 모를 우리 부부는 이렇게 함께 있다. 서로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비로소 하나씩 꺼내놓기도 한다.

2026년. 그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남편은 쉽지 않은 치료를 견뎌야 할 것이고, 나는 계속 성장해 나가는 내 사업을 키워나가며 동시에 병원을 함께 다니고 간호에도 신경 써야 하는 시간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렇게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해인 고3을 보낼 우리의 큰 딸은 또 알아서 그 시간을 잘 견딜 것을 믿는다.


힘들어해서 반바퀴만 돌고 나와 먹고 싶다는 매운탕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한다.


"정말 큰 갈림길에 선 올 한 해였다. 아픈 건 슬프지만 그래도 그 기가 막힌 타이밍이 우리를 붙잡은 거 같다. 병이 얼른 다 나으면 정말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다 해도 요즘같이 살다 가면 크게 미련이 없을 거 같다."


아프고 나서 처음 듣는 남편의 속마음이다. 마음이 좋지 않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내 같이 가자고 나서는 통에 주말에도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산더미인 채로 강제로 나도 쉬고 있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2026년.

너무 두려워말고, 다가오는 일들을 조금 더 자란 마음으로 어른스럽게 받아들이며 용감하게 나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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