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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의 날들 Dec 25. 2023

그 영화, 이런 글 - 1

무방비 도시, 로베르토 로셀리니



때로는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꾸미지 않은 단답형의 문장을 진실의 문은 더 쉽게 용인한다. 독일에 대항하는 비밀 결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 무방비 도시도 후자의 방식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는다.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를 지향하는 이 영화는 차라리 다큐의 느낌에 닿아있다. 으레 그러하듯이 감독의 상징성을 가질 만한 의도적인 소품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그저 배경에 녹아있을 뿐이다. 배경 음악 역시 꼭 필요한 장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면이라든지 이별의 장면에서만 흐를 뿐, 절제되어 있어 그만큼 더 우리는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 인물들의 동선, 화면 전환, 영화적인 카메라 기법도 특별하지 않다. 그저 인물의 시선을 따라서. 상징성을 찾기보다는 화면에 담긴 그대로를 보라고 감독은 소리 없이 말한다. 신념을 담은 이들의 비극적인 현실을 그리는 데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이 있을까. 감독은 영화 내내 인위적이지 않고 사실 일색인 공간을 펼쳐내어 보인다. 집을 수색하는 군인들, 잡혀가는 피나의 약혼자 프란체스코를 되찾기 위해 총을 드는 비밀 결사대, 극 중 가장 긴박한 상황에서조차 카메라는 단조롭게 그들을 관찰할 뿐이다.   

 




그들의 비밀 통로는 안네의 은신처의 책꽂이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누워만 있는 노인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있지만, 비밀 통로를 드나드는 아이들의 주도적인 모습은 가히 희망적이다. 또한 미사를 드리는 성당과 고해성사는 평범한 그들이 살아내는 평범하지 않은 삶에 있어서의 유일한 안식처일 것이며, 은신처의 계단은 그들의 여정을 의미할 것이다. 직선이 아닌 나선형으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계단. 그 계단을 누구보다 씩씩하게 오르는 아이들. 기특하지만 그들의 험난한 여정 그대로이다. 이 씬에서 계단을 오르는 이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아래쪽에서 그들의 발걸음을 무겁고도 불안하게 잡는다.     



영화의 구조는 기승전결의 뚜렷함보다 비극적인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형태를 닮았고 독일군에 대항하는 그들의 투쟁은 일제 강점기의 우리의 그것과도 닮아있다. 독일군은 그들의 일상을 파괴했으며 현재 진행형으로 그들의 일상을 갉아먹고 있다. 어느 시대에서나 그 시대를 위협하는 세력은 있기 마련이며 또 사람들은 그것에 저항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문을 앞두고 좁은 방에 갇힌 사람들은 끝내 두려움을 토로한다. 신부의 말처럼 그들은 영웅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며 지극히 보통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색, 계의 마지막 장면이 그러하듯이 그들의 마지막 역시 비극적이며 그 모습을 영화는 가감 없이 그려낸다. 한 명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자결하고 한 명은 신념을 지키며 죽는다.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신부는 마지막까지 기도하며 자신의 길을 걷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피에르토 신부의 처형을 철조망 건너편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이 있다. 철조망을 부여잡고 절망하는 한 아이의 어깨를 보듬으며 너나 할 것 없이 아이들은 처형장을 떠나 도시로 향한다. 그들과 관객의 눈에 비친 것은 일상의 터전이며 다시금 살아내야 할 전쟁터이다. 또한 그 초반에 신부가 말했듯, “우리는 못 보더라도 아이들은 보게 해야 할” 희망의 광경인 것이다. 아이들의 보폭은 작지만 씩씩하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소리 없이 흐른 건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희망의 레퀴엠이다.     





그들이 추진하던 계획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죽음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들이 지켜낸 그들의 정의는 고스란히 남았다. 궁핍한 현재는 살기에 버거워도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희망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방아쇠가 된다. 비극에 고통하고 패배한 상황을 그렸지만 정의로 새 시대를 열고자 하는 현실이기에 영화의 끝은 종전의 희열보다도 진정한 해방의 길에 닿아있다.    

왜 하느님은 우릴 내버려 두시냐는 물음에 대한 신부의 답은 “모르는 지은 죄가 많으니 끊임없이 찾으며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감독의 의문일지 모른다. 왜 불의의 시간을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걸까. 지상에서 어쩌면 절대자와 가장 가까울 신부의 입에서도 그럴듯한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답은?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것이다. 100분 내내 관객들에게 영화는 분명 말했다. 그대들 자신이 직접 구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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