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게임사였던 라이엇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9년 10월 27일. 리그 오브 레전드, 통칭 LoL로 불리는 게임의 출시일이다.
학창시절 어머니의 유감 어린 시선 아래 플레이 했던 이 게임은 어느새 그때의 학생만치 나이를 먹은 게임이 되었다.
한국의 PC방에서, 중국의 인터넷 카페(网吧)에서, 혹은 미국의 대학 기숙사에서, 우리는 10년 넘게 이 게임을 함께 해온 이들, 이른바 '코어 유저'를 만날 수 있다. 이 범세계적 공통분모의 형성이야말로 오늘날 LoL의 성공에 대한 증거나 다름 없을 것이다.
LoL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6년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1억 명을 돌파했으며, 코로나 특수의 수혜를 입은 2022년에는 1억 5200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했다.
이 높은 MAU 수치가 LoL의 대중적 인기를 조명한다면, 일일 활성 이용자 수(DAU) 평균 3000만이라는 지표는 LoL에 대한 유저 개개인의 높은 몰입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GaaS(서비스로서의 게임)의 선두주자이기도 한 LoL의 진가는 e스포츠 분야에서 드러난다. 라이엇이 주관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통칭 '롤드컵'은, 중국 플랫폼 시청자를 제외한 순수 최고 동시 시청자 수(Peak concurrent Viewers) 약 600만 명을 기록하며 '가장 많은 사람이 시청하는 e스포츠' 타이틀을 석권하고 있다.
현시점 LoL 실력은 가장 시장 가치가 높은 '게임 실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론 LoL IP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아케인'이 에미상 4관왕을 수상하고, 가상 음악 그룹 K/DA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유튜브 조회수 6억회를 돌파하는 등, 미디어믹스 측면에 있어서도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게임 시장이 바라보는 LoL은 상당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이면서, 성공한 사업가인 동시에 베테랑 프로게이머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가장 이에 근접한 프로게이머가 계약 연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아래, LoL이 앞으로도 모든 분야에서 더더욱 선전할 것이란 전망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
그러나 그런 LoL이 출시 당시 도타의 아류작으로 평가받았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다.
2009년 메타크리틱에서 집계한 점수는 78점으로, 일반적으로 일선 게임으로 평가 받는 90점에는 못 미치는 점수였다. 주된 비판 요소는 독창성 부족, 낮은 완성도, 불안정한 서버 등, 얼리 액세스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판이었다.
강점으로 내세우는 낮은 진입장벽, 무료라는 이점 등 역시 동시기 출시된 수많은 게임과 크게 차별화되는 요소는 아니었고, MAU 집계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초기 LoL은 일부 팬층의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견인되는 게임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장장 16년에 걸쳐 온라인 게임의 왕좌에 오른 LoL을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 과거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푼 대가로 가장 잘 나가는 게임의 ‘고인물’이 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혹은 레딧이나 인벤 등 주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오래 LoL을 즐긴 유저들을 찾아가보면 예상과 다른 반응과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라이엇의 패치 방향, 의도, 운영 등 대부분 현황에 유감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더 심하게는 '망겜' '질병게임'과 같은 강한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어째서 LoL은 시장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실패했을까. 코어 유저들은 무슨 이유로 이 게임을 미워하게 되었을까.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LoL이 온라인 게임의 왕좌에 오르기 위해 충실히 따라야만 했던 시장의 논리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2014년 경, 라이엇은 고민에 잠겼다. '우리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자'라는 소박한 목표에서 출발한 LoL은 어느새 스타크래프트나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처럼 세계적인 게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거대해졌고, 그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가야만 하는 과제가 있었다. 바로 낡은 요소의 개편이었다.
당시 LoL은 개발자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같았다. 모델링, 그래픽, 스토리텔링에 서버까지. 초기 LoL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낡은 게임에 가까웠다.
2013년 협곡 그래픽 개선 패치가 호평 속에서 안착한 뒤, 2014년 10월 10일, 라이엇은 향후 혁신의 선봉이 될 챔피언 리메이크 패치를 단행했다. 그 첫 대상이 된 챔피언은 마침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모티브로 한 챔피언 사이온이었다.
리메이크 전 사이온은 기이한 챔피언이었다. 옛날 챔피언 모델링의 상징과도 같은 왕발에, 도끼를 든 언데드 전사임에도 주로 마법사 아이템을 주로 올리는 점. 심지어 “내 소환사는 대체 누구고, 뭐하는 놈이냐?” 라는 개편 전 스토리의 메타적 대사까지.
도타를 비롯한 타 게임에서 노하우를 다수 차용해 개발되었던 초기 LoL과 닮은 점이 많았다. 사이온을 개편하는 것은 곧 LoL을 개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공식 공개된 소요기간 약 2년. 기존 스킨 3개의 모델링을 함께 개편하는 대작업을 거쳐 사이온 리메이크가 발표됐다.
금지된 혈마법으로 부활한 녹서스의 대장군. 존경받는 장군이자, 두려움을 사는 괴물이며, 명예로운 죽음을 모욕 당한 전사. 사이온은 본인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멋있어졌고’, 기존 1%대였던 픽률이 30%까지 오르는 등 단숨에 인기 챔피언 반열에 올랐다.
라이엇의 챔피언 개발 방침 중 하나가 특정 판타지의 구현이란 점에서, 가장 먼저 적진에 돌격하고, 쓰러져도 부활하는 사이온은 ‘광전사’의 판타지 그 자체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 변화를 반기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리메이크 전 사이온 유저들이었다. 도끼를 든 광전사를 마법사 챔피언으로 사용하는 기발한 발상까지 가능케 했던 애정과 연구의 역사는 ‘게임의 개편’이라는 더 큰 논리에 의해 흡수되었다.
체력바의 절반에 달하던 실드량과, 그만한 대미지를 입히던 AP 사이온도, 미니언 한 마리만 있으면 맞으면서 포탑을 밀던 AD 사이온도 사라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이온을 좋아하게 됐지만, 기존 사이온 유저들의 입장에서 이 칠흑의 거인은 ‘사이온’이 아니었다.
4년 뒤 2018년, 아트록스 리메이크 이후 라이엇은 ‘기존 챔피언의 스킬셋을 지나치게 변경하는 것은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LoL이 온라인 게임으로서 성공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챔피언 리메이크 등 개편은 필연적으로 기존 유저들의 바람과는 대치되는 면이 있었다. 초기엔 일부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그것은, LoL 서비스가 장기화됨에 따라 점차로 무시하기 어려운 공통의 목소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챔피언 리메이크를 비롯해 성공적인 변혁을 거쳐 성장한 라이엇은 어느새 굴지의 대규모 게임사가 되었다.
출시한 게임은 LoL 하나 뿐이었으나, 2020년경 LoL의 DAU 최고치는 800만 명으로 이는 동시기 Steam의 전체 DAU와 맞먹는 수치였다.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라는 수식어는 라이엇이 수여받은 왕관인 동시에 그 무게이기도 해서, 시장은 LoL의 성공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해보이길 원했다. 라이엇 역시 LoL 성공으로 말미암은 막대한 자본과 노하우, 무엇보다 팬들의 기대가 마땅히 향할 곳을 찾고 있었다.
2020년 경, 그렇게 출시된 발로란트와 레전드 오브 룬테라(LoR)는 2개월 차이를 두고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같은 게임이었다.
먼저 LoR은 메타크리틱 점수 87점, 주요 게임 웹진 IGN과 GameSpot에서 10점 만점에 9점을 받는 등 평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독창적인 메커니즘과 미려한 아트 스타일 등에 대한 높은 평가는 라이엇이 답해야 했던 모든 의심에 대한 메달과 같았다.
유저 반응 또한 호평 여론이 대세였다. 특히 과금 의존도가 낮은 점과 팬심에 불을 지르는 시네마틱 연출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한편 발로란트는 문제아였다. 우선 FPS의 고질병과 같았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뱅가드 시스템이 화두에 올랐다. 핵에 대한 강력한 방어 기조로 인해 불거진 사생활 침해 가능성과 시스템 충돌 등 프로그램의 적합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라이엇은 뱅가드의 취약점을 찾는 해커에게 최대 1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버그 바운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대응에 힘썼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독창성, 그래픽 퀄리티, 콘텐츠 등,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게임성 논란들이 불거졌다. 같은 분야에서 LoR이 받았던 압도적 호평과는 대조되는 것이었다. 숱한 논란 가운데서 남은 무기는 거대 게임사가 약속하는 공정한 경쟁과, 독창성을 희생하여 얻은 장르적 보편성 뿐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두 게임은 상반된 길을 걷게 되었다.
발로란트는 전세계적으로 흥행하여 온라인 FPS의 표준이자 새로운 e스포츠 강자로 떠올랐지만, LoR은 주류 CCG 장르 경쟁에서 완전히 이탈해 인원 감축 후 PvE 컨텐츠에 주력하는 사실상 개발 중단 게임이 되었다.
LoL은 온라인 게임으로서, e스포츠로서, 미디어믹스 IP로서도 성공했지만, 그 이면엔 장르 확장에 실패했다는 숨겨진 역사가 있다. 이 아이러니한 결과는 온라인 게임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과 보편성이라는 가치가 부상하게 되는 사례가 되었다.
LoR이 평단으로부터 크게 호평을 받은 독창적인 매커니즘의 이면에는 향후 CCG 게임의 금기가 된 요소, ‘복잡성’이 도사리고 있었다.
LoR은 기존 CCG 게임과는 다소 이질적인 턴-키워드 개념이 다수 있었고, 이 요소에 참신함을 느낀 유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 생소한 게임 시스템을 ‘공부’하는 것을 거부했다.
반면 발로란트는 기존 FPS 장르 표준을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핵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서버 안정성을 높이는 등 공정한 경쟁을 제공하는 데에 주력했다.
이로 인해 빚어진 상반된 결말은 비단 온라인 게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분야에서 시장 원리를 설명하는 사례로서 인용되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 경험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은 바로 당사자인 라이엇이었다.
LoL이라는 거대 함선이 두 척의 척후선이 침몰한 것으로 흔들리진 않았지만, 챔피언 리메이크 때만 해도 기존의 가치와 새로운 시도 사이에서 흔들리던 나침반은 끝내 하나의 올곧은 방향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북극성이었다.
LoR과 발로란트 출시로부터 약 4년이 지난 2024년 1월, 라이엇은 다시 한 번 큰 혁신을 거쳤다.
전체 직원의 약 11%에 달하는 530명의 임직원을 해고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아케인 시즌 2를 발표하고 e스포츠 리그 포멧과 일정을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한편 레전드 오브 룬테라는 향후 PvE 컨텐츠에 집중할 것을 밝혀 사실상 개발 중단 상태가 되었음을 공식화 했다. 이 모든 변화는 라이엇의 개발 총력이 게임사로서 근간과도 같은 LoL에 집중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2024년 시즌 테마는 ‘녹서스’였고, 녹서스는 사이온이 속한 LoL 세계관 속 국가이며 확장주의가 특징인 거대 제국이다.
이 테마가 암시하는 것처럼 LoL은 전에없는 규모의 패치를 진행했다. 협곡 지형이 변경되고, 신화 아이템 체계가 삭제되었으며, 신규 몬스터 ‘공허 유충’이 등장했다. 바야흐로 장기 서비스 게임이 된 LoL의 복잡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신호탄이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신화 아이템 삭제로, 대부분 유저들이 환영한 이 패치로부터 LoL의 급격한 뱃머리 돌리기가 시작되었다.
신화 아이템은 2021년경 추가된 새로운 아이템군으로, 이전까지의 아이템과 명확히 구분되는 강력하고 개성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다. ‘선혈포식자’나 ‘신성한 파괴자’ 등의 아이템이 보여주었던 충격적인 장면들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많은 LoL 유저의 망막에 새겨져 있다.
신화 아이템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전략적 선택을 유도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동시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피해량 인플레이션, 소위 ‘죽창 메타’로 불리는 파급 효과가 문제시 되었다.
2015년 라이엇이 내부 API를 공개한 이래 챔피언의 승률이나 가장 효율적인 아이템 빌드 정보를 제공하는 ‘전적 사이트’가 등장했다.
유저들은 랭크 게임에 임하기 전 가장 티어가 높은 챔피언과 아이템 빌드를 조사했고, 그런 수고를 감수할 이유가 없는 라이트 유저들은 차츰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신화 아이템은 이러한 랭크 환경과 맞물려 챔피언과 아이템 빌드의 심각한 고착화를 야기했다.
게임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밀려나게 된 라이트 유저에게도, 그런 방식으로 승리하게 된 코어 유저에게도 이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라이엇은 2022년 전 챔피언의 내구성을 일괄적으로 끌어올리는 ‘내구도 패치’라는 극약처방을 실시했고, 2024년엔 끝내 신화 아이템 체계를 삭제하게 되었다.
이는 코어, 라이트 유저 가리지 않고 환영 받는 변화였으나, 상당한 개발력을 기울인 아이템 체계를 말소하는 선택에까지 이르게 한 라이엇의 변혁 의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화 아이템 체계가 정보력에 따른 경쟁력 차이를 낳았듯이, 아직 LoL에는 긴 서비스 기간 동안 쌓인 이른바 ‘복잡한’ 요소가 무수히 많았고, LoL에서의 경쟁이란 즉 이러한 복잡성에 얼마나 숙련되어 있는지 겨루는 것과 같았다.
단, 이때부터 라이엇이 손을 대기 시작한 복잡성은 비단 게임 시스템 뿐만 아니라 LoL의 역사와도 같은 유저 연구 그 자체이기도 했다.
디나이, 프리징 등 숱한 전략들은 유저들의 진입장벽과 피로도를 높이는 등 부정적 측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깊이있는 플레잉과 수싸움을 가능케 했던 애정어린 연구의 결실이기도 했다.
그렇게 2024년 패치 후, LoL의 유저 경험은 큰 변화를 겪었다. 이것이 실제로 어떤 경험으로 다가오는가. 한 사이온 유저의 게임에서 그 일례를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패치 이전, 게임 시간 6분 시점 솔로킬에 성공한 사이온은 포탑에 웅크리고 있는 상대 판테온을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제 앞으로 상대가 취득할 미니언의 3할, 혹은 그 이상을 통제할 수 있다. 게임 시간이 10분, 20분 경과될수록 더더욱 본인은 압도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판테온은 마치 그동안 게임을 나간 것처럼 허약해지거나, 그냥 나가버릴 것이다.
그러나 2024년 패치 이후, 마찬가지로 6분 시점 솔로킬을 성공한 사이온은 자신의 라인전 우위가 ‘공허 유충 싸움에 먼저 간다’는 메리트로 치환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유충 교전에서 역시 활약한 사이온이었만, 뜻밖에도 이 싸움으로 가장 득을 본 것은 싸움에 참여하지도 않고서 버프를 획득한 아군 바텀 라이너였다.
이어서 사이온은 8분, 15분 시점 오브젝트 싸움에도 호출되었고, 20분에도 사이드에서 상대 판테온을 밀어낸 순간 팀에게 호출되었다. 팀적으로 반드시 쟁탈해야만 하는 오브젝트 ‘아타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 교전 역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가장 덕을 본 아군 케이틀린은 맡은 바 역할을 다해줄 것인가. 사이온은 확신할 수 없었다.
공허 유충, 아타칸 등 오브젝트 추가는 한 마디로 말해 개인의 우세를 팀 단위 이득으로 환산하는 것이었다. 압도적 기량으로 게임을 좌지우지 하는 개인과 그 전략을 라이엇은 잠재적인 위협으로서 판단한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비슷한 의도를 가진 패치가 수없이 이어졌다. 미니언 무리의 속도가 빨라지고, 경험치 취득 범위가 늘어나며, 정글러의 공격로 개입 루트를 단순화 한 것은 모두 한 가지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모든 플레이어의 저점을 높이고, 고점을 낮춘다’. 그리하여 LoL이라는 작품을 1인칭 영웅담 5권에서 3인칭 군상극 1권으로 만드는 것이 라이엇의 목적이었다.
2024년 패치가 있기 전, 사이온은 로밍과 사이드 플레이 등, 튜토리얼에 나오지 않는 최적화된 전략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2배 3배로 늘려 나머지 상대 모두를 압도했을 것이다.
어떤 메타라기보다 게임의 이치와도 같았던 이 구조에서 라이엇은 LoR 실패의 편린을 엿보았다. LoR의 참신한 플레이 매커니즘이 사실은 시장의 외면을 받았듯이, 숙련된 LoL 유저가 상대에게 강제하는 ‘깊이있는 전략’ 역시 시장은 원하는 바에 반한다고 라이엇은 판단했다.
LoR에는 상대의 플레이에 후속 대응하는 메리트를 누리기 위해 그냥 행동권을 넘기는 플레이가 있다. 비슷하게 LoL에서도 일부러 라인을 밀지 않고 상대의 자원 손실을 유도하는 플레이가 있다.
둘 다 모든 유저가 공부해야 하는 숙제라는 점은 같았지만,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전자는 라이엇의 개발실에서 탄생한 반면, 후자는 인터넷 카페(网吧)나 대학 기숙사, 혹은 PC방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LoL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최고점이었던 1억 5200만 명에서 1억 3000만 명 대까지 감소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해소된 이후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게임을 더욱 사랑하기 힘들어지는 제반 유저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과거 자식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불안한 시선과 마찬가지로, 숱한 게임 가운데서 오직 LoL에게만 주어졌던 범세계적인 사랑이 통째로 무위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은 유저와 라이엇 모두를 몸서리치게 하는 먹구름과 같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LoL이 연승을 거두고 있는 전장이 있다.
거대한 도끼를 든 사이온이 결코 마법사가 아니고, 각 팀 10명이 오브젝트를 두고 한 화면에서 싸움을 벌이는 장면에 환호를 보내는 이곳. 유저들의 유감어린 시선 속에서 라이엇이 결사적으로 항로를 선회한 이곳은 바로 e스포츠 씬이다.
실제로 LoL의 MAU가 감소한 것과 같은 시기 e스포츠 씬은 성장 일로를 밟고 있다. 2024년 롤드컵 뷰어십 694만 명이라는 수치는 가장 최신인 동시에 최고점을 기록한 수치였다.
첨예한 경쟁 속에서 라이엇의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한 프로 선수들이 오늘도 서로의 기량을 겨루고 있다.
이 전장에서 초 단위로 이루어지는 치열한 경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또한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환호할 수 있는 이들의 존재를 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라이엇이 긴 여정 끝에 초대하고자 하는 손님이기도 하다.
10년에 걸친 유저 연구는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진 QA와 같았고, 이는 무엇보다 LoL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스포츠가 되는 데에 기여했다. 이 장대한 역사는 LoL은 오늘날 가장 유력한 e스포츠의 선두주자와 동시에 이를 가장 선명한 화질로 즐길 수 있는 시청자를 남겼다.
한편 ‘아케인’을 시작으로 뻗어나갈 LoL 미디어믹스 역시 마찬가지다. 숱한 게임이 떠오르고 저물어간 가운데, 오직 LoL만이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게임의 영상화에 성공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아케인에서 등장한 삭제 아이템 ‘하트-오브-골드’와 같은 이스터에그나, K/DA 가사에 녹아있는 인게임 은유 등은 시장의 논리를 뛰어넘어 오늘날 LoL을 있게 한 공로자들에게 직접 보내는 병속에 담긴 편지와 같다.
오늘도 협곡에서는 새로운 누군가가 랭크게임의 첫 ‘배치고사’를 치를 것이고, 수백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가 진행될 것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LoL은 이 모든 역사를 기억하고, 오늘의 목소리를 내어줄 이들을 찾고 있다. 그리하여 누구의 어떤 애정도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LoL은 과거에 그랬듯 미래에도 유저의 사랑으로만 견인될 것임을 밝히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