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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타 Sep 21. 2020

눈물의 길

당신이 아름다움 속에서 걷게 되기를.
-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도문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인식해 그곳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불렀다. 이후에도 계속 인디언이라 칭하는 이유는 2만 5천여 년 전에 그들이 아시아에서 베링 해협을 가로질러 알래스카로 온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빙하기 11만 년 전부터 1만 5천 년 전 사이에는 해수면이 낮아져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유라시아 북동부에 살던 몽골계 민족들이 대거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아메리카 원주민 상당수는 우리 민족의 후예였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우리는 기뻤다. 우리는 처음에 그들이 빛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동틀녘처럼 오지 않고 해질녘처럼 왔다. 이미 지나간 한낮처럼 왔다. 그들과 함께
우리의 미래에는 깜깜한 밤이 찾아왔다.
- 원주민 추장


콜럼버스가 바하마 군도의 히스파뇰라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호기심 많은 아라와크족 사람들은 섬 해안가로 나와 그들을 맞으며 음식과 물, 선물을 가져다줬다. 그들은 콜럼버스 일당을 따뜻하게 맞으며 무엇이든 기꺼이 베풀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건장한 원주민을 스페인으로 보내 노예로 팔거나 여자들을 스페인 선원들의 성노리개 삼았다. 모든 원주민에게 금을 모아 오라고 명령한 다음 금을 가져오면 목에 구리표식을 달아줬고 구리표식을 달지 못한 원주민은 두 팔을 잘라 서서히 죽게 했다. 도망치다가 붙잡히면 목매달거나 불태워 죽였다. 칼날이 잘 드는지 시험해 보려고 원주민의 목을 베거나 살점을 잘라냈다. 재미 삼아 산채로 토막을 내기도 했다.


남편은 광산에서 일하다가 죽고, 아내는 밭에서 일하다가 죽고, 태어난 아기는 굶주린 어미에게서 젖이 나오지 않아 죽고...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았다. 독을 먹고 집단 자살하거나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직접 죽이기도 했다. 2년 동안 원주민 25만 명 가운데 절반이 죽었다. 원주민들은 절망적인 침묵 속에 고통받으며 죽어갔다. 지금은 그 섬에 순수한 아라와크족 후손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1607년 버지니아에 정착한 백인들에게 원주민 포우하탄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으로 조용하게 가질 수도 있는 것을 왜 힘으로 얻으려 하는가? 왜 당신들에게 먹을거리를 주는 우리를 짓밟으려 하는가? 전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왜 우리를 질시하는가? 우리는 무기가 없고 당신들이 친구처럼 대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기꺼이 줄 것이다. ... 우리 모두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당신네 총과 칼을 거두지 않으면, 당신들 모두가 똑같은 방법으로 죽게 될 것이다.”


대지 위로 나는 오네.  
대지 위로 나는 오네.
나는 인디언 전사.
대지 위로 나는 오네.
나는 인디언 유령.
- 다코타족의 노래


1830년 ‘인디언 제거법(Indian Removal Act)’이 제정되면서 10만여 명의 미국 원주민이 미시시피강 서부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1만 7천 명의 체로키족은 끝까지 저항하다가 마지막 길을 떠난다. 이들의 이주 행렬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 부른다.


1,900킬로미터 길 위에서 4천여 명이 추위와 배고픔, 질병, 사고 등으로 죽어갔다. 아내와 남편을 길가에 묻고 동사한 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걸었을 눈물의 길은 미국에서 가장 슬픈 길 위의 역사다.


요슐라, 행복하라.
 - 아파치족의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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