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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타 Aug 23. 2020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photo by Arif Ibrahim

대다수의 아이들은 집안이 가난하기 때문에
일한다. 일하는 아이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벌어온 돈으로 음식을 마련하고,
아이들은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이튿날 다시 일터로 향한다.
그들은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고,
탐욕스럽거나 이기적이지도 않다.
다만 그 외에는 다른 생존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아이들은 굶주림과 질병을 매일같이
겪으면서 삶의 교훈을 배운다.
- 제레미 시브룩, <다른 세상의 아이들>


사진 속 소녀는 온 가족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하루 열다섯 시간씩 악착같이 일을 해도 최저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수많은 사람들이 식량 부족으로 죽어가는데, 선진국 사람들은 전 세계 곡물 4분의 1을 소들에게 먹이고 그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으로 죽는다. 이 얼마나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인가. 극소수 사람들은 점점 부유해지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매일 더 가난해진다. 정의에 속고 삶에 배반당하고 인간의 존엄을 유린당하는 것이다.


식량을 배급받으러 가던 수단의 어린 소녀가 결국 지쳐 주저앉고 만다. 독수리는 뒤에서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케빈 카트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나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했다. 수단은 여전히 기아에 허덕인다. 풍요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날마다 10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 한 해 700만 명이 시력을 잃고,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죽어간다.


몇 세기 동안 이 나라는 반복했다.
우리는 잔인한 짐승임을.
인간의 심장박동이 흑인들의 세계,
그 입구에서 멈췄음을.
우리는 그저 걸어 다니는 노예임을.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시뻘건 인두로 지져
노예의 신분임을 새기고
우리는 헛간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광장에 내다 팔았다.
1야드의 영국 옷감과
맵짠 아일랜드의 고기가
우리들 몸값보다 약간 쌌다.
이 나라는 이렇게 평화로웠고, 조용했고,
신의 영혼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노예선의 토사물이었다.
우리는, 칼라바(노예매매장)의 사냥감이었다.
귀가 먹었는가. 우리는, 터질 것 같은 멍과,
안개를 머금은 열대풍이었다!
소용돌이여, 나를 용서해다오!

나는 듣는다. 포박에서 풀려난 저주를,
임종의 숨소리를, 익사자의 음성을…
아이를 낳는 한 여인의 신음을…
목구멍을 긁어 대는 손톱들의 마찰음을…
채찍의 비음을…
시들어 가는 시체들을 갉아먹는
해충들의 꾸물거리는 소리를…
- 에메 세제르, <귀향 수첩>


중세시대 유럽이 암흑기를 보내고 있던 시기에 니제르강 부근의 서아프리카 대제국들은 수준 높은 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뛰어난 행정제도를 확립하고 페스, 카이로, 메카, 제노바와 같은 도시들과 융성한 무역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다.


20년간 미국이 가한 무역과 금융거래 금지, 자산 동결 등의 경제제재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어 왔다. 국가 간 불평등의 격차는 세계화와 금융자본의 힘이다. 세계화는 다국적 기업의 힘이 국가를 초월할 만큼의 지위를 확보하게 만들었다. 금융자본이 모든 것의 우위에 서서 소수의 인물들이 전 세계를 장악할 만큼 막대한 권력이 되었다.


인종적으로 사고하는 백인에 의해 흑인은 흑인으로 규정되었다. 식민주의는 타인에 대한 존재의 부정이며 정체성과 뿌리를 지우려는 야만의 행위었다. 식민지 민중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며 집단 트라우마를 겪는데 백인들은 원주민에게 강탈한 땅 위에 저개발 민족들에게서 약탈한 자원으로 풍요와 부를 누린다.


수천 개의 부족이 조화롭게 살아가던 아프리카는 유럽인들에 의해 50개국으로 강제 통합되었다. 아프리카의 통일은 이제 지역주의로 변질되어 국적이라는 빈 껍질 속에 안주한다.


나는 신성한 상처에 깃들여 있다.
나는 상상 속의 조상들 속에 깃들여 있다.
나는 막연한 소원 속에 깃들여 있다.
나는 오랜 침묵 속에 깃들여 있다.
나는 치유되지 않는 갈등 속에 깃들여 있다.
나는 천 년 동안의 여행 속에 깃들여 있다.
나는 300년 동안의 전쟁 속에 깃들여 있다.
- 에메 세제르, <나, 다시마>


“사람은 세상을 만들고 숲은 상처와 흉터를 안고 살아간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그들은 ‘신성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슬픔은 밑으로 가라앉아 앙금처럼 남고, 평원의 석양은 상처 입은 그들의 생을 장엄 속에서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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