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키운 강아지와 같은 종류이기도 했고, 첫 1년은 '오만 난장' 라이프를 살긴 하지만 개춘기 시기가 지나면 소문 그대로 '천사견'으로 거듭나는 견종. 우리에겐 맹인견으로 널리 알려진 녀석을 난 망설이지 않고 입양 1순위로 올려놨었다. 8개월간, 카페와 유기견 보호소를 들락 거리며 운명처럼 나타날 그 녀석을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기회는 닿지 않았다. 딸아이도 이젠 별이 된 엄마의 리트리버 '몽'이 와의 추억담을 듣고 자랐어서 그랬는지 대형견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찾아 헤맨 녀석. 드디어 내 인생에 운명처럼 나타난 견생이 있었으니 '블랙 래브라도 리트리버' 바로 이 녀석이었다.
사진 속의 견생은 태어난 지 2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까만 털, 반짝이는 눈동자, 축 늘어진 귀. 그래. 털 색만 달랐지 이런 모습이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내게 안식이 되었던 '몽'이와 같은 모습. 같은 눈빛.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전과는 다르게 사진 속 이 아이를 놓칠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다.
남편에게 녀석의 사진을 보내고 가족회의에 들어갔다. 어릴 적부터 항상 강아지를 키워온 나와는 달리 마흔이 넘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은 남편은 걱정도 심하고 불만도 많았기에 누구보다 그의 의견을 깊게 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매번 퇴짜만 놓던 남편이 흔쾌히 허락하는 게 아닌가. 남편의 의외의 반응에 놀라 진심인지 다시 물었다.
'8개월 동안 기다리고 준비했잖아. 더 미뤄서 뭐해. 이젠 결정할 때가 된 거지.'
남편의 승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카페에 적힌 전화번호로 조심스레 문자를 넣었다. 간단한 내 소개와 입양이 가능한지에 대한 문의. 간단한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은 끝에 나는 사진 속 그 녀석을 입양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남편과 녀석을 데려오는 날짜를 일요일로 정한 뒤 약속을 잡으려는데 가족들이 녀석과 정 떼는걸 힘들어하고 낯선 사람들과 가게 되면 녀석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다며 직접 이곳으로 오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야 어차피 기름값 안 들겠다, 나쁠 것 없어 그렇게 하십사 답변을 보냈고 분양 카페에 연락을 하고 불과 5시간 만에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그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친 게 하나 있었다.
녀석을 만나러 가면서 느껴야 했을 가족들의 설렘, 그 설렘 안에 다져질 책임감, 녀석을 만나고 집으로 데려 오면서 느껴야 했을 반가움, 녀석을 품에 안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애틋함 말이다.
오후 4시. 자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아파트 벨을 눌렀다. 올해 26살이 되었다는 그녀를 따라 낯가리는 아이처럼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선 녀석은 엉덩이를 쭉 빼더니 선뜻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했다. 몇 번 킁킁거리더니 갑자기 '왕!' 소리를 내더니 뒤로 물러난다. 그래.. 낯설기도 하겠다. 그래도 '무조건 짖고 보자'는 심산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싶었다.
6월 30일 생이라고 했으니 오늘 기준으로 2개월 + 2일.
얼마나, 어떻게 키웠는지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내 식구가 될 녀석이었으니 상관없었다. 다만 파양 이유가 궁금했다. 엄마 젖 떼고 입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길래 싶었다. 이유는 부모님 중 한 분이 건강검진에서 '천식'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이제 곧 결혼해 출가를 해야 하는데 부모님은 '대형견'을 키우기엔 너무 연로하셔서 더 이상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본인들이 출가하면서 아이를 데려가면 되는 게 아닌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녀들은 강아지와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게 마음이 아팠던지 잠시 녀석 에게 우리 집 구경을 시켜줘도 되냐고 물었다. 무언가 묘해진 상황. 내가 시켜줘야 할 내 집 구경을 방금 만난 타인에게 맡기는 우스운 상황이 살짝 의아했지만 까탈을 부릴 일이 아니기에 그러시라 했다. 잠시 후 그녀들은 녀석을 끌고 이방, 저 방을 다니며 강아지에게 뭐라 뭐라 말을 했고, 엄숙한 목소리로 내게 당부했다.
'아직 아가라 대소변은 70%밖에 못 가려요. 그렇다고 혼내지는 마세요. 칭찬 많이 해주시고요, 그리고 어떻게 자라나 사진도 보내주세요. 블라블라.'
뭐랄까? 그녀의 당부 어린 말이 마치 의무는 회피한 채 권리만 누리려는 무책임한 사람의 모습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차라리 '카페에 사진 많이 올려주세요. 종종 보러 올게요' 했으면 나았을 뻔했는데 그녀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아쉬운 마음만 가득했고, 이별의 슬픔만 가득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아무리 안타까워도 지금 상황은 파양의 순간이 아닌가. 물론 여러 방법을 모색한 뒤 내린 결론이었겠지만 그렇다고 파양의 순간이 아름다운 이별이 될 순 없는 것이다.
녀석은 태어난 지 이제 겨우 2개월이 되었다. 엄마품을 떠나 낯선 가정에 입양된 지 길어야 한 달쯤 되었다는 소리다. 내가 느끼는 그녀들의 행동은 '차라리 어릴 때 빨리 파양 하는 게 모두가 행복한 일'이라 합리화시키고 서둘러 해결하려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별이 가슴 아프다는데. 그녀들의 이별 방식을 존중해줄 수밖에.
마지막으로 그녀들은 녀석에게 큰 육포 간식을 건네주며 ' 이곳에서 좋은 기억을 심어주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 이 말도 남겼지.
'이가 나서 간지러운지 요즘 입질을 자주 해요. 터그 놀이하면 더 그런 것 같으니 하지 말아 주세요. 자녀분이 나이가 어려 걱정이네요.'
녀석은 집으로 들어올 생각도 안 하고 그녀들이 떠난 문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기다리지 마. 아무리 기다려도 누나들은 안 와.'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녀석과 노는데 이 녀석 입질이 심상치 않다. 왕년에 대형견 두 마리를 키워본 경력자(?)의 촉이 발동했다. 이건 단순 이갈이 입질이 아니었다. 손을 장난감이라 생각하거나 깨무는 걸로 의사 표현을 하는 상황? 그제야 입질에 대한 당부의 말을 헤어짐 말미에 흘린 그녀의 깊은 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강아지 동생이 생기면 너무 좋을 거란 핑크빛 꿈만 꾸던 딸아이는 좋다고 덤벼 대는 건지, 신난다고 깨무는 건지, 알길 없는 녀석의 당돌함에 겁을 먹었다. 딸아이 상상 속의 강아지는 주인에게 순종적이며 말 그대로 착착 안겨야 옳았는데 펄쩍펄쩍 뛰면서 무섭게 달려들기만 하니 당황해 연신 의자에 올라가 다리를 감싸고 앉아있기 바빴다.
당황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집안 분위기가 익숙해 지자 천방지축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주어도 우선 손부터 물었다. 안 되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면 종아리, 허벅지로 앞 발을 번쩍 들어 달려들었다. 순간 머릿속이 엉망이 됐다. '내가 어떻게 몽이를(래브라도 레트리버) 키웠더라? 내가 어떻게 장군이를(알래스카 말라뮤트) 키웠더라?' 기억 속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돌려봐도 몽이와 장군이는 단 한 번도 '입질'을 하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그때였다. 머릿속을 뎅! 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들. 녀석은 몽이와 장군이와는 다른 입양 과정을 거친 것이었다.
몽이와 장군이는 가정에서 건강한 부모견 아래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2개월이 넘게 부모에게서 사회화 교육을 얼추 받고 자란 뒤 내게 왔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입질을 예로 들면, 어미 강아지는 새끼 강아지를 키우는 과정에서 만약 새끼의 입질이 심하다 느끼면 아프던 말던 바로 응징을 내린다. '요노무 시끼, 너도 한번 아파봐라. 물리면 아프지? 네가 물어도 이렇게 아픈 거야. 그러니 조심해.' 뭐 이런 느낌으로 훈육을 한다고 할까? 그렇다 보니 부모견으로부터 교육을 잘(?) 받고 입양된 아이들은 적어도 반 이상의 매너를 갖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녀석은 이제 겨우 2개월, 첫 입 양지에서 적어도, 못해도 4주는 살았을 것을 예상했을 때 아마 어미젖을 떼자마자 바로 분양된 게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니 물면 상대방이 아프다는 걸 배웠을 리.... 없겠지.
덤벼들듯 반가움을 표현하는 녀석 때문에 딸아이 다리에 상처가 났다. 순간 강형욱 님의 '개 훌륭'에 나오는 '문제 견'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내가 방송에 나오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그제야 내가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부모견 밑에서 1차 사회화 교육을 받은 강아지 인가.
두 번째: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이미 개떡 같은 교육이 각인이 되었다면 '개망나니'가 될 수도 있겠구나.
세 번째:그 사람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올게 아니라, 내가 데리러 갔어야 했다.
방방 뛰는 녀석을 진정시킬 정신이 없어 하네스를 연결한 뒤 산책을 나갔다. 세상에.. 천방지축. 난리가 났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지나가는 자전거, 씽씽이, 다른 개들,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신이 났는지 우선 앞 발을 들고 달려가 덤비고 보는 녀석. 정말 환장스러웠다. 이미 딸아이와 남편의 다리엔 발톱으로 긁힌 자국이 서너 개가 더 생긴 뒤였다. 난감해 어쩔 줄 몰라하는 그때였다. 프랜치 불도그 한 마리를 끌고 산책을 나온 견주분이 인사를 건넸다.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덩치,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하지만 친절하게 묻는다.
"안녕세요. 강아지 이름이 뭔가요? 제 강아지와 인사시켜도 될까요?"
당황함의 최고치를 찍는 시점이었다. 난 앞뒤 가리지 않고 천사처럼 나타난 그분을 향해 걱정을 듬뿍 담아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자 그분이 웃으며 설명을 해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설명을 듣는 동안 방방 뛰고 줄을 물고 흔들어대며 난리 버거지를 핀 녀석과는 달리 프랜치 불독은 가만히 앉아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저음의 천사는 전문적인 지식부터 교육 방법을 알기 쉽게 실전으로 보여주며 설명해 주었다. 그쯤 되니 전문가의 스멜이 솔솔 풍겼다. 알고 보니 그분의 직업은 전문 '동물 훈련사'. 이렇게 얻어걸리기도 쉽지 않은데. 녀석을 데리고 온 첫날, 개판 오 분 전의 상황에서 우리가 처음 만난 반려인이 무려 '전문 동물 훈련사' 였다니.
직업의식이 투철했던 걸까? 아니면 우리의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중저음의 천사는 1시간이 넘도록 정작 본인의 강아지는 한 곳에 묶어둔 채 열혈 강의를 해주었다. 그제야 어렴풋이 기억났다. 내가 몽이와 장군이를 키우던 그 시절이. 그때 했던 교육들이 말이다. 반려견에게 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매년 2000건 이상 개 물림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 때문에 펫 보험이 인기가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또 얼마 전엔 개통령이라 불리는 '강형욱' 님도 아메리칸 불리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대체 왜 개 물림 사고의 발생 빈도가 점차 높아지는지 생각해봤다.
오늘 우리 집으로 온 녀석처럼, 어릴 때부터 잘못된 버릇을 갖고 있는 녀석들을 교육 없이, 행동 교정 없이 그대로 키운다면 분명 '무는 개'가 되어 안락사 대상 1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0만 반려견 시대. 애완동물에서 반려 동물로 더 나아가서는 집안의 구성원으로 강아지를 대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무얼 얻고 놓치고 있는가 잠시 생각해봐야 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오냐오냐 키우면 사람도 망나니가 되듯 개도 마찬가지이다. 크면 잘하겠지, 말귀 알아들으면 들어 먹겠지 하고 놔두면 그건 무책임하게 문제 덩어리를 키우는 것 밖에 안된다.
사랑하되 잘못된 것은 확실하게 혼나고, 아닌 것은 반드시 일러주는 조기 교육은 사람이나 강아지나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