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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뇽스 Jun 08. 2021

솔직히, 너 혼자 자기엔 침대가 커

아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늘 안아줘야 잠이 들었다.  내가 출장을 가거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아들의 꿈나라는 아빠의 품 안에서 열렸던 것이다. 


초등학생이 되고 이따금씩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왜 네 방에는 침대가 없어?" 

"넌 어디서 누구랑 자?" 

거리낌 없이 묻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우물쭈물 넘겨나가던 아들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혼자 자겠노라 선언을 하였다. 

'9년을 안고 재웠는데, 하루아침에 어떻게..?'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였고, 아들은 아주 씩씩하게 독립에 성공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아들은 성장하고 있었고, 문제가 없었다. 내가 문제였다. 


아들이 없는 잠자리가 어색했다. 정확히 말하면 허전했다. 긴 시간,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숨소리, 온기, 뒤척거림, 이불 실랑이... 그 모든 것들이 없어지니 적막하고 쓸쓸했다. 결국 나는 베개를 들고 아들의 침대로 향했다. 


"아직은 좀 무서울 것 같아서, 같이 자주는 거야." 아들은 씩 웃으며 옆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너 혼자 자기엔 솔직히 침대가 너무 커."난 아직도 아들과 함께 잠이 든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한다. 50이 되던 해에, 가장 친한 친구였던 남편을 떠나보냈다. 이듬해에 장남인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3년 후 두 아들은 모두 장가를 들었다. 두 아들의 독립 직 후, 암이 재발했고 모두가 옆자리에서 떠난 채 10년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매 순간의 이별은 마음이 쓰렸을 것이다. 내가 아들과 잠자리를 분리하며 느꼈던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상실감이었을 것이다. 


허전함은 생활이 되었을 것이며, 내색하지 않는 동안, 슬픔과 자기 연민은 스트레스로 차곡차곡 쌓여 갔을 것이다. 병세가 깊어가며,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책은 쓸쓸함과 외로움을 억눌렀을 것이며,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자식들의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에만 몰두한 채 생을 마감하셨다. 


상실감의 깊이와 크기를 짐작하지 못했고, 헤아리지 못했다. 아직도 그러지 못한다. 어머니가 간절히 바랬던 바일지도 모른다. 


내가 과연, 당신께서 10년간 옥죄어 오던 죽음의 공포와 더해가는 허전함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의연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단 한 번이라도 마주하고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단 한 번만이라도, 오랫동안 비어있던 당신의 옆자리에서 잠을 청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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