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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뇽스 May 31. 2021

골프가 과연 운동이 될까?

Casey Martin과 PGA Tour

현재 기준 전국 골프장 숫자는 대략 500개 정도이며, 1년간 내방객 숫자는 약 4천만 명에 달한다. 참여 스포츠의 타 종목들과 비교하여도 압도적인 수치이다. 골프는 더 이상 부유층만 즐길 수 있는 여가가 아니다. 물론 직장인들은 큰 맘먹고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비싼 스포츠이지만, 이미 대한민국의 골프장은 말 그대로 풀 부킹 상태이다.  

 

모두를 멈추게 한 코로나 시대에도 골프는 더욱 성장하고 있다. 서울 근교를 중심으로 주요 회원권 가격은 가볍게 50% 이상 상승하였으며, 주중/주말을 가리지 않고 주요 골프장의 티타임은 예약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며, 골프장은 친목/ 회식/접대를 대체하는 업무의 영역으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가히 폭발적인 수요와 함께 관련한 산업도 불황을 모른 채 성장하고 있다.

 

이런 현시점의 특수성과 더불어, 세대를 막론하고 골프에 이토록 열광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역사적으로 귀족들이 즐기던 고급 스포츠라는 인식도 있을 것이다. 폼나는 취미이고, 심지어 운동이다. 다시 말해 골프는 스포츠이며, 열심히 하면 건강해지는 운동이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과연? 골프는 운동이 될까? 대한민국 아마추어 골퍼들은 모두 카트를 타고 경기한다. 선택의 여지없이, 대한민국의 모든 골프장은 원활한 진행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무조건 카트를 타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트를 타고 즐기는 골프를 스포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스포츠 (Sport) 보다는 게임 (Game)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케이시 마틴 (Casey Martin)이라는 선수의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1972년생인 케이시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선배로서 타이거우즈와 골프팀을 이끌기도 하였으며, 재학 시절 Pac 10 3회, NCAA 우승을 이뤄낸 엘리트 골프 선수이다.

Tiger Woods (좌) & Casey Martin (우) _ Stanford 재학 시절

여기까지만 보면, 별다를 것이 없는 유망한 선수의 예측 가능한 성공 스토리이지만, 케이시에게는 다른 선수들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케이시는 클리펠-트레노우네이-베버 증후군(Klippel-Trenaunay-Weber syndrome)이라는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이름도 생소한 이 유전병으로 인해, 케이시의 오른쪽 다리는 아래와 같은 증상을 상시 갖고 있으며, 정상적인 보행도 불가능하다.

Klippel-Trenaunay-Weber syndrome

따라서 그의 골프 라운드에는 카트가 필요했다. 골프선수로서 프로 전향을 향해 나아가던 케이시는 1998년 2부 리그 격인 Nike Tour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PGA Tour 진출에 가까워지게 된다. 아마추어 시절의 마지막 해였던 98년, 초청받았던 여러 대회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남기며, 그의 프로 전향은 많은 골프팬들의 관심사가 된다.

 

자연스럽게 프로 골프계에서는 “카트를 타고 경기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다. 케이시의 실력과 성적이 점점 메이저 무대에 가까워지자, 경쟁 상대들은 “나도 카트 타고 경기를 하면 더 잘 칠 수 있다.” 는 식의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고 그가 PGA Tour에 진출을 시도하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었다.


골프계는 양분되었다.


투어의 수장인 커미셔너 팀 핀첨 (Tim Finchem)과 전설 잭 니클라우스 (Jack Nicklaus)는 "골프에 있어서 모든 라운드를 걸어서 경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경기의 일부이며, 전통이다. 만약 케이시만 카트를 타고 경기를 한다면, 그는 불공정한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반면, 최고의 거물 선수였단 그렉 노만 (Greg Norman)과 톰 왓슨 (Tom Watson)는 "골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교한 샷 구사능력이기에, 장애를 가진 선수들을 투어가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경기의 본질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론하였다.


논쟁의 과정은 너무도 치열하고, 장황하여 생략하기로 한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사회적인 관심과 응원뿐만이 아닌, 대법원 (US Supreme Court)의 판결에 따라, 케이시는 PGA Tour에 진출하게 된다.

비록 프로에서 훌륭한 성적을 남기지는 못하였지만, 1998년부터 2012년까지 프로선수로서 케이시는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대등하게 경쟁하였다. 보행이 불가능한 수준의 장애를 갖고 프로선수로서 쉬지 않고 활동한 케이시는, 많은 면에서 존경받아 마땅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를 평가절하하는 다른 의견들은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케이시의 사례로 비춰 볼 때 골프는 스포츠인가? 게임인가?


내가 생각하는 스포츠로서의 골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은 아래와 같다.

1.   정교한 샷 능력

2.   평정심을 잃지 않는 정신력

3.   18홀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체력


하지만, 이 중 3번은 케이시의 사례로 볼 때 골프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다. 나의 판단 기준에 있어서 3번 "18홀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체력" 이 배제된다면, (카트를 타고 즐기는) 골프는 스포츠보다는 게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전히, (카트를 타고 즐기는) 골프는 좋은 경관을 즐기며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건강한 레저활동이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 사람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골프는 평생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취미생활 중 단연 최고의 옵션이다.  

 

종합하자면, 건강해 지기 위해/운동을 다녀온다며 주말에 집을 나서는 가장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일 수 있지만, 당신의 (카트를 타는) 골프는 충분한 운동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건강해 지기 위해서는 보충 운동을 좀 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라운드가 끝나고 술자리까지 이어진다면, 더욱이 건강과는 거리가 있는 여가 생활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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