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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뇽스 Dec 25. 2021

코로나 검사 결과가 미결정상태입니다.

음성과 양성 그 사이 어딘가

오미크론 발생 직전인 11월 중순, 2년 만에 영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은 이전보다 훨씬 번거로웠다.


출국 전,

1. 48시간 내 PCR음성 확인서 발급

2. 백신 접종증명서 발급

영국 현지 도착 후,

3. 24시간 내 PCR 검사

한국으로 출국 전,

4. 48시간 내 PCR 검사

한국 귀국 후,

5. 24시간 내 PCR 검사

6. 6일 차 PCR 검사


무려 여섯 단계를 모두 거쳐야 출장을 다녀오고, 완벽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검사도 검사이지만, 매 검사 때마다

'혹시라도 양성이 나오면 어쩌지?' 걱정으로 긴장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위의 5단계까지 무사히 음성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수동 격리를 완료하기 위해 6일 차 검사를 받았다.




다음날 검사 결과를 문자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전이면 나오던 결과가 점심시간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마침내 정오 경 보건소에서 문자가 울렸다.  

보건소 미결정 문자 원본

미결정. 양성과 음성 경계상이라니..


사무실에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 그간 미팅으로 만났던 사람들, 아내, 그리고 매일 물고 빨던 아이들. 모두의 얼굴이 말풍선처럼 떠올랐다.


'아 맞다, 내일이 장인어른 칠순잔치인데.'


위드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이 거의 2년 만에 갖는 공식행사였다. 만약 내가 양성이 나온다면, 당연히 취소가 될 것이며 우리 가족들도 모두 검사를 받아야 한다.


바로 재검사를 받고 바로 자가검사키트를 구매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보니, 음성이다. 초기에는 자가검사키트도 꽤 정확하다고 하니 안도가 된다. 여전한 걱정을 안은채 집으로 향했다.


'아. 그런데  음성과 양성의 경계라는데 집으로 가도 되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어쩌지? 차에서 자야 하나? 호텔도 안되잖아? 양성이면 어떡해. 민폐니까. 결과 나올 때까지 차에 있어야 할까 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집으로 들어와. 우리 이미 같이 밥 먹고, 놀고, 자고 다했어. 당신 양성이면 우리다 양성이야. 어차피 운명공동체야. 들어와 빨리. 당신 결과 나올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말고, 나가지 말고, 그러면 돼. 걱정 말고 들어와서 얼른 쉬어. 양성이면 네 가족 통째로 집에서 재택치료야."


내가 결혼은 참 잘했구나. 이렇게 아내가 고맙고 든든한 적이 있었던가. 여유라고는 털 끝만치도 없는 심적 패닉 상태에서도, 동네방네 "내 와이프가 이런 사람입니다." 자랑하고 싶었다. 양극의 감정이 혼재하여 울그락 불그락 운전대를 집으로 향했다.


여하튼, 복잡한 마음은 밤새 가라앉지 않았고, 내내 마스크를 쓰고 결과를 기다리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문자가 울렸다.


"결과는 음성입니다." 마스크를 집어던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옥 같은 48시간이었다. 위의 과정을 체험하며 느낀 바는 아래와 같다.


1. 무엇보다 힘든 것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나오는 미결정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들이었다. 미결정은 잠재적 양성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미결정이 모두 양성의 전 단계는 아니다. 미결정이 나온 검사 당시, 평소보다 얕게 코를 찔러 검체를 수집하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 비해 너무도 수월해서 이상한 생각에, "오늘은 아프지 않네요." 여유 있는 피드백을 주며 검사소를 나왔었다. 검체가 완전치 못했거나, 소량이라 쉽게 오염되었을 수 있다. 이제 시작 전에 충분히 깊게 찔러 달라고 얘기하려 한다.


2. PCR 음성 확인은 탈락자 발표 같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하는 거대한 생존 게임, 더 정확히 전쟁을 치르고 있다. 총알을 피해 다니지만, 스쳐서 총상을 입으면 최소 14일간은 방에 갇혀서 쉬어야 한다. 심하면 입원을 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PCR 음성 확인은 바로 그 감금형에 대상이 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탈락자 발표와도 같다. 총알이 너무도 많이 날아다니고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아서, 누구든 총상을 입을 수 있다. 간혹, 규칙을 어기고 총을 맞은 채 다른 사람들에게 총알을 난사하는 슈퍼 전파자들도 있다. 탈락자가 될 수 있는 조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며, 대통령부터 노숙인까지 그 누구도 언제든 어디서든 탈락자가 될 수 있다. 모두가 극도의 불안상태에서 아슬아슬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3. 가족은 소중하다. 특히 배우자의 반응은 극도의 불안상태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따뜻한 위로와, 든든한 격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같은 편이라는 메시지는,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나도 아내에게 받았던 마음을 기억할 것이며, 늘 갚으며 살아갈 것이다.


탈락의 위험 없었던, 편안했던 일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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