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개학 전에 말이에요.
드디어 내일이다. 9:15분 비행기이니 7:00까지는 공항에 가야겠다. 6:00으로 택시를 예약했다. 오늘 저녁까지 일한 탓에 짐을 제대로 꾸리지 못한 것 같아 불안하다. 남은 짐을 차분하게 다 챙기고 자야겠다.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비행기에서 자면 되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캐리어를 정리하며 채운다. 지난주 이맘때쯤 둘째 아이가 B형 독감에 걸렸다. 많이 힘들어했지만, 여행 1주 전에 아파서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하며 기특해하였다.
드디어 오늘이다. 한두 시간 정도 잤다. 5:30에 일어나 옷 입고 출발하려니, 아이들도 힘들어한다. 그래도 늦지 않고 공항에 잘 도착했다. 방학이라 그런지, 공항에 사람이 정말 많다. 긴 체크인 줄과, 출국심사까지 통과하는데 40분 정도가 소요됐다. 나쁘지 않다. 아침밥 먹고 탑승하면 되겠다. 시간이 잘 맞는 것 같아 안도한다.
그런데, 첫째 아이의 안색이 심상치 않다. 영 맥을 못 춘다. 어떤지 솔직히 말해보라 다그치니, 괜찮다고, 그냥 가벼운 감기 같다고 한다. 그러던 녀석이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누워버린다. 불안하다. 이제 탑승까지 단 30분에 남았는데..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은 과부하상태이다. '독감이면 어쩌지? 동생에게 옮아서, 이제 아프기 시작한 거라면? 괌에는 한국처럼 바로 진단하고 수액을 맞거나, 타미플루를 신속하게 받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비행기에서 구토를 시작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돌려보니, 답이 안 나온다. 그럼, 아내와 딸만 보내고, 내가 아들과 함께 탑승을 취소하고 병원을 갈까?
비행기, 호텔, 갖가지 환불수수료를 고려하니 지금 취소하면 날아가는 비용이 너무 많다. 아내와 딸에게 둘이라도 잘 다녀오라고 설득해 본다. 아빠바보 딸내미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한번 해보겠단다. 부랴부랴 필요한 짐을 아내에게 전달한다. 신파극이 따로 없다. 아들은 어느새 의자 뻗어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게이트 앞 탑승직전 항공사 직원이 질문한다. "혹시 수화물은 어느 분 이름으로 보내셨어요?" 아차. 모두 내 이름이다. 내가 타지 않으면 그 짐들은 보안상의 이유로 모두 파기된다.
어차피 우리는 가족공동체로서 모두 가면 같이 가고, 못 가면 같이 못 갈 운명이었나 보다. 이제 몸져누워버린 아들 병원이 우선이다. 들어온 길을 그대로 돌아나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험난하다. 역심사를 통해 법무부의 특별 서류를 받아야 하며, 보안검사도 다시 해야 한다. 그 사이, 걷기도 힘들어진 아들은 휠체어에 태우고 그 긴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행히도, 인천공항 지하에 인하대학교 병원이 있다. 검사 결과 B형 독감 확진. 항바이러스 수액을 맞는다. 수액빨이겠지만, 급격하게 컨디션이 돌아왔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병간호를 시작해야겠지. 만약 지금 비행기를 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하다.
나에게도 여행이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쉬운 일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계획하지 않아도 빈틈없었고, 서두르지 않아도 여유로웠다. 20대의 여행과 30대의 여행이 다르듯이, 40대의 여행도 이렇게 다르다. 가정이 있는 40대에게 여행의 기회는 쉬이 오지 않는다. 부부가 일을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니, 더더욱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사방에 창궐하는 독감이니, 코로나니, 전염병으로부터 가족들이 모두 안전해야만 한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한숨 가득 찬 우리 가족을 위해, 다시 계획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