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인풋탐험대, 인터뷰 시리즈
뉴스레터 <인풋탐험대> 아트편의 인터뷰를 모아 소개합니다.
15호 도슨트의 세계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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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경험디자인 #도슨트 #창작자 #커뮤니티
안녕하세요, 우숨님. 저희는 어느새 세 번째 뵙게 됐죠.(웃음) 소개를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보통 저를 이렇게 소개하는데요.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심리학을 전공하고 예술에 대한 동경으로 도슨트와 창작자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람과 예술을 마주 보고, 그곳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우숨입니다.
많이 고민하고 정리하신 소개라는 게 느껴져요!
오래 발전시켜 온 것 같아요. 요즘은 특히 ‘사람, 예술,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됐어요. 어느 순간 ‘도슨트’로만 저를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걸 좋아하는지 좀 더 생각해 봤거든요. 사람 좋아하고, 예술 이야기하는 것 좋아하고, 연결하는 경험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서 사람들을 모으기도 하고요. 저를 정의하는 단어를 찾고 있어요. ‘연결 경험 디렉터’라고 하면 될까? 고민하면서요.(웃음)
도슨트지만, 출발이 미술 전공이 아니라는 점이 독특하게 느껴졌거든요. 다른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면 좋겠는데요. 과거로 돌아가서, 심리학이라는 전공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상담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20대를 살았어요. 당연히 대학원에 가야 하니까, 학점에 미쳐 있고.(웃음) 캠퍼스 라이프도, 친구도 없어서 ‘노라이프’라고 했거든요. (혹시 학점을 여쭤봐도 될까요?) 4.0 만점에 3.9였거든요. 해외대학이었는데, 오히려 학점에 신경 쓰다 보니 잘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왔던 것 같아요. 너무 큰 부담을 갖고 있었죠. 하루에 4시간만 자고 계속 공부하고… 왜냐하면 제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채로 갔으니까 수업 내용을 녹음해와서 세 번씩 듣고 그대로 외워서 시험을 쳤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해외에서 그 문화를 즐기거나,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언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더 많이 되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매달릴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워낙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왔고요.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상담사를 하고자 했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다 보니 제가 정말로 그 일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어요.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지?’ 고민했죠. 대학 때부터 ‘스트레스’와 ‘웰빙’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이들의 웰빙에 대해 연구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직 심리학을 택해서 대학원에 갔고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았거든요. 그런데 대학원 이후의 삶을 꿈꿔본 적 없이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공기업 채용 시험 NCS 문항을 개발하는 연구팀에 들어갔어요. 회사 분위기 자체가 ‘적막한 스터디 카페’ 같았는데요. 대화를 많이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일 자체도 최대의 성과가 ‘실수하지 않는 것’이었죠. 그러다 보니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웠어요. 점차 일터에서의 무기력함이 삶을 침범해왔어요.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이 하루 종일 무기력한 상태로. 결국 무모하게 회사를 나왔어요.
무모하다고 말씀하셨지만, 또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네요. 지금과는 정말 다른 분위기의 일을 하고 계셨는데, 그다음 길은 어떻게 되었나요?
연구직과는 정반대의 서비스업으로 뛰어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던 편집숍에서 일을 구하고, 독립출판을 좋아하니 책방에서도 오래 일을 했어요. 일주일에 하루는 하고 싶던 목공을 배우러 갔고요. 회사에 다닐 때는 제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나오고 보니까 저는 생각보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거예요. 소규모로 결이 맞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즐겁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즈음 도슨트를 맡은 전시가 《백 투 더 퓨처: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 탐험기》라는 전시였는데요. 처음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해설이 끝나면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더링을 진행해 봤어요. 많으면 5명, 적으면 2명. 전시 경험을 같이 나눈다는 게 굉장히 좋았어요. 제가 배우는 게 정말 많은 거예요.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모여 있는 사람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일이 좋았어요.
도슨트는 언제 처음 하게 되셨나요?
도슨트는 대학원을 다니던 때에 처음 하게 되었어요. 대학원에 갈 때는 박사 진학까지 생각했는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 석사만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제가 전시를 보러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요. 마침,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 양성 과정’이 있다는 걸 알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운 좋게 도슨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가장 처음에 맡은 전시가 덕수궁관의 《기억된 미래》라는 야외 전시였는데, 아쉽게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어요.
일찍부터 학업과 병행하며 도슨트 일을 시작해 오신 셈이군요.
맞아요. 졸업 후에 회사를 다니는 동안 한 번 더 과천관에서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시 해설을 맡았어요. 그때 당시만 해도 은퇴하신 분들이 도슨트를 많이 하셨는데요. 저희 부모님 또래이신 분들인데, 너무나 열정을 갖고 임하시는 거예요. 수백 장짜리 논문을 끌고 와 공부하시고, 그런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저도 저렇게 도슨트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관, 과천관, 서울관, 청주관, 네 개의 관이 있는데요. 덕수궁과 과천관의 도슨트를 경험해보았으니 서울관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관마다 다루는 시대도 조금씩 다르거든요. 덕수궁관, 과천관, 서울관 순으로 오래된 작품에서 동시대 작품으로 넘어오죠. 저는 동시대 미술을 가장 좋아하니까 서울관에서 꼭 도슨트를 해보고 싶었어요.
동시대 미술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동시대 미술은 어렵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동시대 이전의 미술은 무언가 배경지식이 있어야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다면, 동시대 미술은 온전히 내 느낌으로 보고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설명을 들을 때 더 풍성하게 이해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냥 그 자체로 본인이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죠. 보통 국현(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를 보러 온다고 하면 저는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맡는 소금빵 냄새부터 전시 경험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미술 전시를 보는 전후 과정까지도 관람에 포함되는 거죠. 뜬금없이 오는 길에 봤던 꽃이 예뻤다든지, 매표소의 공간을 유심히 보았다든지, 주변 사람들은 작품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한다든지.
와닿는 작품이 있다면 좋은 거고, 어렵다면 도슨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요. 도슨트는 관람객이 전시와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니까요. 꼭 작가가 생각한 메시지를 맞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본인이 느끼고 경험하는 부분에 더 집중하면 좋겠어요. 작품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고, 저는 그걸 조금 더 쉽게 도와주기 위해서 방법을 슬쩍 알려드리는 역할이고요.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오시면 재미있는 전시 비하인드를 이야기해드리기도 해요.(웃음)
우숨님에게 ‘도슨트’란 정말 좋아하는 일 같아요.
처음 갭먼스를 가질 때 좋아하는 일을 1년 안에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진짜 바보 같았어요. (좋아하는 일을) 찾기 정말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전시를 보러 가는 일도 오히려 친구들이 먼저 “네가 좋아하는 일이지 않아?”라고 말해줬어요. 그럼 저는 ‘그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망설임이 있었거든요. 오히려 이렇게 전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경험을 하면서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거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난생처음으로 제가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죠. 그래서 이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지키고 싶어요. 사람들을 초대하는 전시 게더링도 계속하고요.
‘전시 게더링’이라는 걸 처음 들었어요. 다른 도슨트분들이 하는 일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제가 사람들과 전시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미리 사람들을 초대해서 전시 해설 시간이 끝나면 소규모로 모여 같이 전시에 대한 감상을 나누죠. 보통 페오패치 인스타그램(링크)으로 해설 날짜를 올려서 사람들을 모으는데요. 감사하게도 ‘가드너’로 활동했던 ‘파인더스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주셨어요. 제가 창작자로 참여했던 《우린 이것을 요술이라 부르기로 했다》 전시 동료들도 많이 와주셨고요. 그렇게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할수록 배우는 게 많아서 좋았어요. 게더링을 지속하다 보니 ‘넷플연가’에서 제안을 받아서 모임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창작자로 일하신 경험도 궁금한데요. 《우린 이것을 요술이라 부르기로 했다》는 어떤 전시였나요?
영등포구와 영등포문화재단이 주최하고, 피스오브피스라는 예술가 팀이 주관한 시민 예술가 양성 프로그램이었어요. 12명의 시민 창작자가 함께 ‘브리콜라주’를 주제로 3개월간 워크숍을 하고, 전시를 열었어요. 예술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막상 다른 분들은 거의 미술을 전공하신 분들이더라고요.(웃음) 재미있는 건 어떤 분은 농사지을 때 필요한 ‘용접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오셨대요. 목공, 용접, 플라스틱 가공 같은 교육이 있었거든요. 전시에 참여하고, 창작을 직접 해본 일이 어쩌면 예술에 대한 물꼬를 튼 경험이라고도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같이 한 사람들도 좋았고요. 도슨트를 할 때에도 창작자로서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느껴요.
‘예술’이나 ‘창작’이라고 하면 어쩐지 어렵게 느껴지는데, 우숨님은 계속해서 그것들을 쉽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창작이라는 게 저한테도 너무 어려워요. 잘하는 사람, 훌륭한 작가들도 많이 보게 되는데, 그럼 눈은 괜히 높아지고.(웃음) 그러니까 저는 과정이 결과인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과정을 창작하면 되잖아요. 꼭 하이 퀄리티의 결과물, 아웃풋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과정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요.
지금도 많은 ‘과정’을 만들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바로 얼마 전에 ‘취향장’이라는 플리마켓에 참여했어요. 저는 위빙을 해서 물건을 만들고, 제 파트너는 뜨개질로 물건을 만들어서 ‘숨뎅이’라는 팀 이름으로 작고 귀여운 것들을 판매했어요.
그리고 독립출판물을 좋아하다 보니 ‘비엔’이라는 작가님의 책 표지에 그림을 그리고, 같이 북페어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저 바보 아닙니다 바버입니다>)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두 번째 책에도 다시 한번 참여하고 있고요. <멕시코 푸라면>이라는 책인데요. 작가분이 3개월 동안 멕시코에서 여행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이번에는 제가 더 주도적으로 텀블벅 펀딩이라든지, 굿즈라든지, 책과 관련한 경험을 같이 계획하고 디자인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멕시코 음식도 먹고, 게임도 하고, 라면도 끓이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책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무언가 기획 중이에요. 또, 제가 직장에서 교정 교열을 했다 보니 책 검수도 해드리고요.(웃음)
예전부터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는데, 만들고 보면 성에 차지 않았어요. 그런데 스스로 식경험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붙이신 ‘강은경’이라는 분을 보고 큰 영감을 받은 거예요. 그분은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저는 사람들과의 연결 경험을 디자인하고, 디렉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파인더스 클럽’ 커뮤니티에서 모임을 리드하는 ‘가드너’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도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이 좋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을 추천해 주고, 매칭해 주고, 연결해 주는 일 말이에요.
그래서 인터뷰 초반에 ‘연결 경험 디렉터’라는 말이 나온 거군요!
정의할 수 있는 말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해서 전문가가 되고 싶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는 다양하게 경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고, 씨앗을 뿌려놓으면 또 다른 일도 해볼 수 있죠. 용기를 심는 과정처럼요. 할 수 있을 때 많은 일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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