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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Oct 16. 2020

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를 좋아하는 걸지도

나는 누구일까요



  그녀는 흐린 날은 싫어하고, 비 오는 날은 좋아했다. 내일의 일기예보에 구름이 있으면 어떤 비가 내릴까 기대하는 모습으로 들떠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날은, 그녀의  문 앞을 서성거렸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나를 만나주었으니까. 가끔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그녀를   있었다. 가까이는 아니더라도, 괜찮았다. 비가 쳤더라도 흐린 날이 계속된다면  오래 있을  있었다. 나는 흐린 날도 좋다. 섭섭한 마음이더라도 비가 있기에 내가 함께할  있기에.


  동거하는 그녀의 친구는 비를 소름 끼치게 싫어했다. 옷도 젖고, 가방도 젖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습기도 가득한  뭐가 좋냐며 그런 날에는 불쾌지수를 마구 흩뿌리고 다녔다. 그녀에게도 나와 같은 존재가 있다.  신경질적인 그녀는 유독 그런 날만 그를 찾았다. "짜증나도 어떡해! 어쩔  없잖아. 솔직히 쟤도 귀찮아."라고 말하며.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녀와 그녀의 친구는 비에 대한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너는  비가 좋고, 너는  비가 싫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조용히 그녀 편을 들고 있었다. 오늘도  뻔한 토론은 시작되고 말았다. 그녀가 말했다.

"빗소리에도 감정이 있는 거 알아?"

부슬부슬. 투둑투둑. 추적추적.

"어딘가 축축하고 아련하면서도 포근한 게 좋아. 뭔가 위로받는 느낌이잖아. 그래서 난 비 오는 게 좋아."

그렇구나. 그녀는 나와 비슷한 색을 띤다. 잔잔한 남색. 아마 그래서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어딘가 서글퍼 보이기도,  어딘가 성숙해 보이기도 했다. 단단해 보이지만 비가 오면 위로받는 작은 영혼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비에 대한 주제는 나로 옮겨졌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걔가 좋아. 걔랑 같이 있으면 안정감이 들어. 나를 지켜주는 느낌이랄까.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걔랑만 있는 공간은 오로지 내 공간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나는 비가 오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걔랑 같이 있는 걸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넌 안 그래?"

  그녀의 친구는 그 귀찮다는 존재의 장점을 애써 찾아보았다. 친구는 그래도 다른 애들과 다른 게 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글쎄. 걔는 속이 다 비쳐. 걔 얼굴을 올려다보면 주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 보인다니까? 그게 맘에 들어. 답답하지가 않더라고." 맥주를 한 모금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애가 좀 약해. 출근길에 사람 빽빽한 거 알지. 그때 같이 있으면 맨날 다른 애들한테 치여서는 다쳐있다니까... 으휴." 

그녀가 답했다. "너는 좀 그만 바꿔. 하나라도 소중하게 생각해봐바. 애초에 괜찮은 애를 고르던지." "야, 내가 바꾸는 게 아니라 걔네가 사라지는 거야." 

그래서 늘 그녀를 기다리는 이들이 바뀌었던 거구나.


  비를 좋아하는 그녀라 다행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지켜주고 싶다. 넓은 품으로 안아주고 싶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내일도 비를 기다린다. 일말의 기대이지만 따갑게 부서지는 햇빛도 기다린다. 문득 내가 생각날 수도 있으니. 



"그래, 내 이름은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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