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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Mar 31. 2021

너를 너보다 더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별의 사유라면

나는 누구일까요


  맞닿아있던 오랜 시간은 기억너머 사라지면 그만이지. 엄지손가락으로 내 볼을 쓰다듬었던 기억 또한 차갑게 잊혀지고 말거야. 너를 너보다 더 알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이별의 사유라면 애써 무던히 추억으로 묻어둘게. 


  기억 나. 계속해서 어색하다는 너에게 차근차근 나를 알려주던 그때. 이런 면이 있네, 라며 칭찬해줄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는지. 누군가와 일상을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던 나에게 한껏 마음을 내주던 너였잖아. 너에게 선택받은 기분은 황홀했어. 작은 손을 가졌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너에겐 내가 딱 맞는다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랑하곤 했는데. 그때부터 무심했던 하루가 바쁘게 지나갔어.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부족했고, 사소한 모습도 곳곳에 기록했잖아. 


  우리는 너무도 편안했고, 익숙했고,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어. 모든 게 너로 가득 차서 숨이 벅찬 순간들도 있었지. 내가 너무 단조로웠던 탓일까. 너의 눈에서 어느 순간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갈망이 보였어. 두렵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나로선 최선을 다했으니 그저 안심했던 것 같기도 해. 이미 우린 많은 비밀을 나눴으니까. 


  내일이면 우리가 만난 지 딱 3년. 언젠가일 줄은 알았지만 내일일 줄은 몰랐어. 오래도록 함께하면 질리지 않냐는 어느 누구의 무심코 던진 질문에도 가뿐히 내편을 들던 네 모습에 안주했어. 그건 순간의 뭉게구름같은 말이었는데. 녹아버린 얼음처럼 아른거리던 순간들이 녹아내려. 허무하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금세 지나갈 거야. 나를 만나는 몇 달 동안 내가 아닌 누군가를 떠올린 거 사실 다 알고 있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도 쉽진 않을 거야. 그동안 나와의 습관에 흔들리지 말아 줘. 그때 난 이미 네 옆에 없을 테니까. 이것도 나의 외침일 뿐일까. 아쉽게도 우리의 끈끈한 인연 따위는 너에게 달려있었잖아. 어쩌면 나는 네가 보고 싶을 것 같아. 온기가 그리워질 것 같아. 


  나의 이별은 보잘것없이 조용해. 내 사랑이 가엾기도 하지만, 기꺼이 행복했지만서도 초라했다 생각하지는 않아. 너의 마음이 떠나가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나를 필요로 했었잖아. 그걸로 충분해. 

마지막 인사였는데, 넌 아쉬운 듯 해맑아 보이더라. 

안녕, 잘 가.



"그래, 내 이름은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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