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국 사람들은 곧잘 독일이 큰 땅덩어리를 가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경제적 지표나 개념이 국토의 크기에서 나온다고 여기는 걸까. 지도를 살펴보면 한눈에 봐도 유럽의 국가들은 오밀조밀 크기가 고만고만하고 독일의 영토는 이웃한 폴란드나 프랑스에 비해서도 작고 (물론 네덜란드나 벨기에에 비해서는 큰 편이지만)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주변을 둘러볼 때 뾰족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알프스지역이나 알프스에 가까운 독일 남부 지역에 살지 않는 한 산을 본다는 것은 꽤나 드문 일이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한국에서는 주변에 유명한 산이나 적어도 뒷산이 크고 작은 산맥을 끼고 이어져 있고 항상 그곳에 있다. 서울의 도심에서 우뚝 솟은 북한산이나 남산을 찾아낼 수 있는 것. 그것은 나에게 이제는 한국적인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걷는 것, 특히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평지를 걷는 것과는 다른 기분과 감흥을 느끼게 하는데 한국에서는 산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사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게 되면 끝없이 이어지고 펼쳐지는 평야와 함께 달리는 기분을 느낀다. 높이 솟은 산 하나 없이 대체로 자를 대고 정돈한 것 같이 잘 구획된 들판이 초록 물결과 함께 빠르게 지나간다.
하염없이 이어지는 평평한 땅에서 살게 되면, 나름의 장점도 있다. 서향으로 기우는 저녁해는 숨을 곳을 찾지 못하고 그저 길고 길게 그 빛을 그대로 내보인다. 해가 지는 풍경이 오랫동안 머문다. 길어질 대로 길어진 내 그림자가 나를 따를 때, 한낮의 더위는 사그라지고 황혼의 온기가 향기로운 듯 빛깔을 바꾸며 내 얼굴에 담긴다. 산책하는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해가 지는 길을 따라 걸어 나가는 것. 해가 지는 방향으로 내 몸을 맡기고 저녁을 온전히 맞이하는 것. 그러다가 비어있는 벤치에 앉아서 숨을 고르다가 다시 내 그림자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애완견과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 번거롭지만 머리가 가벼워지고 다리도 가벼워지는 이 작은 습관은 그렇게 내 일상의 일부이다.
다른 도시에 가서도 몸에 밴 습관은 여전하다. 그리고 함부르크 역시 예외가 아니라서 가파른 언덕이나 고개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이 도시에서도 저녁해는 오래도록 점점이 기울어져 간다. 환히 밝혀진 지평선. 햇볕이 비추는 가로수길. 그것이 산책로에 머무는 모습은 또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져버린 꽃잎들. 봄꽃의 그림자가 눈꽃마냥 눈부시다. 이 저녁은 내일도 있겠지만 오늘은 오늘로 유한한 까닭에, 이 유한함이 산책길의 빛과 그림자를 더 절대적이게 만든다.
저녁을 선물 받는 것. 저녁 산책길에 적어보는 생각들. 특별하지 않아서 더 소중한 시간이다.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