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영화인 척하는 제대로 된 어른 영화
나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사랑한다. 동화인 척하는, 잔인하고 냉철하다가도 따뜻함이 있는, 반전과 충격으로 점철된 그의 작품들 말이다. 입덕의 시작은 바로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다. 고3 시절 친구와 화끈하게 조퇴를 내고 보러 간 영화다. 당시 딱히 볼 것도 없고 시간도 맞아서 얼떨결에 보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팀 버튼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도 몰랐다.
영화가 시작되고, 충격과 긴장감이 한바탕 몰아치고, 나는 영화에 완벽히 반했다. 배우들의 연기, 푸르고 흐린 영상 분위기, 독특한 설정과 스토리, 섬뜩한 괴물 캐릭터까지 정말 내 취향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게 어린이들을 위한 영환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의 눈알을 파내고, 그걸 먹고, 투명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생각보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물론, 전체적인 설정과 복선도 좀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19살의 나는 매우 흥미롭게 영화를 봤고 집에 오자마자 검색창에 영화를 검색했다. 여러 해석들을 읽어내리며 나는 확신했다. 감독은 천재라고.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정말 미친 상상력이다. 디즈니와 픽사를 사랑하는 나지만 그와 상반된, 조금은 잔인하고 잔혹한 동화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느꼈다.
손에 닿는 것은 모든지 불을 붙이는 능력을 가져 가죽 장갑을 항상 끼고 다니는 아이, 공기보다 가벼워 납 신발을 신고 살아야 하는 아이, 독특한 쌍둥이, 투명 인간, 입 안에서 계속해서 벌이 나오는 아이, 머리 뒤에 입이 달린 아이, 미래를 꿈으로 볼 수 있는 아이 등을 돌보는 새로 변하는 원장 선생님까지. 글로만 읽으면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장면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
넘실거리는 여운과 감명은 며칠간 계속됐고, 그 주 주말에 나는 재관을 위해 다시 영화관을 찾았다. 그렇게 상영 중에 두 번 보고, vod로 나왔을 때는 억지로 엄마를 옆에 앉히고 추천하며 또 보고, 영화 채널에서 방영하면 또 봤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매일 같이 들어가는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마주했다. 질릴 정도로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제 또 봤다. 12세라고 얕잡아 본 나를 매년 혼내주는 영화다.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영화 팬이라면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빠른 호흡과 충격의 연속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게 될 것이다. 너무 진지하거나 슬프고 어려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더없는 추천작이다. 하하호호 행복하고 예쁜 동화 속 세상을 경멸하는 사람들에게도 무조건 추천이다. 으스스하고 섬찟한 이들의 세계에 한 번 발을 들이면 나처럼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