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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배운다

by 시 쓰는 소년

최근 들어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이 눈에 띈다.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알고리즘'타기의 효과도 한몫을 한 것 같다. 독서에 관심을 가지면서 책과 관련한 콘텐츠가 눈에 들어오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시와 관련한 콘텐츠가 눈에 들어온다.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노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시를 쓰는 분을 알게 되었다. 시를 오랫동안 써 왔고, 시집 출간을 목표로 열심히 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분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다른 분의 시를 어느 정도 읽나요? 시집을 몇 개 정도 가지고 계신가요?'


이 질문을 받은 분께서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시길래 한편으로는 너무 무례한 질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지만, 시를 쓰려면 다른 사람들이 쓴 시 역시 많이 봐야 한다는 것에 대해 나누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쓴 시를 읽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것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아야 하며 꾸준해야 한다. 우리가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의 시선에서 최대한 몰입하여 집중하는 것만큼 시 역시 왜 이 시를 쓰게 되었으며, 어떠한 감정으로 이 시를 써 내려갔는지에 대한 나름의 평을 해볼 필요가 있다. 행여, 그것을 '자기 것 화' 한다고 할지라도 단순한 '모방'이라고 치부해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우는 자세로, 습득하는 자세로 다른 사람들의 시를 탐독하다 보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시선이나 감정의 정체성을 읽게 되는 순간이 오리라 확신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공부를 잘하기 위해 과외를 받거나, 운동을 배우기 위해 코치에게 지도를 받는 과정과 비슷하다. 다만, 거기에는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그에 할애하는 시간을 아까워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야를 넓히고, 사유를 확장하는 방법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책장에 어떤 '선생'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독자에게 읽히는 글, 작품성을 인정받는 글을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지만, 언젠가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든든한 밑천이 되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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