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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로 사라지다

파리

by 서람


“요놈들이 다 어디 갔어?”

오래전 어머니께서 시골 사실 때 하신 말이다. 여름철 시골은 파리 떼가 극성이고 집안까지 파고들어 몹시 성가시다. 어머니는 참다못해 파리채를 들고 한 두 번 허공에 휘두르면 그 많던 놈들이 종적을 감췄다.

모두 없애겠다는 과욕이 불러온 성급함의 착각일까? 아니면 파리채를 실제 위협으로 느껴 숨어버린 걸까? 아직도 미스터리다.


“용서해 주세요”

파리는 자주 앞다리를 비빈다. 이는 철저한 생존 전략이다. 맛을 느끼는 감각세포가 다리에 있는데 이를 깨끗이 닦아 먼지가 감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일종의 청결 루틴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행동을 의인화해 ‘용서해 주세요’라고 해석한다.


“왜 자꾸 달라붙어?”

파리는 사람의 피부에서 나는 냄새와 체온을 감지해 들이댄다. 특히 짭짤한 땀은 귀중한 영양원이다. 이때 움직임이 없거나 자고 있으면 더 안전하다고 착각한다. 손등, 발등, 이마처럼 얇고 촉촉한 피부는 최적의 활주로다.


“우리도 할 말 있어”

어느 여름날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저녁에 퇴근하던 파리(Fly)와 출근하는 모기(Mosquito)가 마주쳤다.

M : 이게 누구야, 악당 파리 아닌가? 요즘도 쓰레기 더미 위를 배회해?

F : 어라, 흡혈귀네. 아직도 사람 피 빨며 밤잠 설치게 하니?

M : 나는 적어도 고인 물에 알을 낳지. 너처럼 똥이나 쓰레기 위에다 알을 낳는 건 좀, 심해.

F : 그게 나의 존재 이유야. 난 세상의 부패물을 처리하는 청소부인걸. 내 유충(구더기)이 싹 분해하지. 몹쓸 병이나 옮기는 주제에 웬 훈수!.

M : 흥, 너도 잡다한 병을 퍼뜨리잖아. 더구나 낮잠 자는 사람에게 까불다가 맞아 죽어 파리 목숨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놓고.

F : 뭐, 인정하지. 그런데 인간에겐 우리 둘 다 못된 해충일 뿐이야.

M : 좀 억울한걸. 사실 우리가 없으면 세상이 어떻겠어? 나는 새나 큰 곤충의 먹이가 되고 식물 수분도 해주고.

F : 맞아. 나도 먹이사슬에서 수많은 형들의 식량이지. 너처럼 꽃가루도 나르고, 친척 초파리는 인간의 실험 연구에도 쓰이는데.

M : 그럼에도 인간들은 내가 잠 못 자게 한다고 온갖 쌍욕을 퍼붓지. 왜 자기들 기준으로만 세상을 볼까? 자연은 자기들이 파괴하면서 말이야.

F :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겠냐? 언젠가 알겠지. 우리가 없으면 세상이 안 돌아간다는 걸.

M : 그래, 반가웠다. 다음에 또 보자, 인간들 앞에서 조심하고.

F : 너도 짧은 생애지만 실한 자식들 잘 생산해라 안녕.


둘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아름답다.


파리의 존재는 어쩌면 자연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들이 없는 공간은 냄새도, 온기도 없어 인간이 살 수 없다. 모든 파리가 혐오 대상도 아니다. 대부분은 자연에 순환을 돕는다. 다만, 일부가 인간의 공간에 들어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파리는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도시 위생을 철저히 하고 음식 쓰레기만이라도 잘 처리한다면, 그들마저도 물러갈지 모른다.


파리는 파리목(目)이며 바퀴벌레, 모기와 함께 3대 해충이다. 이질, 콜레라, 식중독 등을 옮기기도 한다. 날개가 두 쌍인 다른 곤충과 달리 앞날개 한 쌍만 있다. 뒷날개는 작게 퇴화하여 비행 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가슴근육이 강하고 몸이 가벼워 빨리 날 수 있다.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하여 ‘똥파리’라는 말이 생겼다. 사건 현장에서 파리의 변태 과정이 법의학적으로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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