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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과 수덕사

by 김기만

충청남도 예산에는 다양한 산이 있다. 예산과 서산의 경계에 있는 가야산, 그 이웃의 덕숭산, 그리고 또 다른 이웃인 용봉산과 수암산이 그것이다. 이 중 용봉산이 가장 유명하며, 수암산은 주로 지역 주민들이 찾는다. 가야산, 용봉산, 덕숭산은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 특히 안내 산악회에서는 용봉산과 덕숭산을 연계하는 산행 프로그램을 자주 운영한다. 덕숭산에는 그 유명한 수덕사가 자리 잡고 있다. 수덕사는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로 널리 알려졌지만, 화가 이응노의 흔적이 남은 수덕여관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덕숭산을 찾으며 안내 산악회를 이용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용봉산에서 수암고개를 거쳐 마을로 내려온 후, 다시 수덕고개로 접근해 덕숭산을 오르고 수덕사로 내려왔던 기억이 전부다. 이번에는 덕숭산만 제대로 가보기로 했다.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데 길어야 3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조금 더 긴 등산로를 찾아보았다. 덕숭산 정상에서 바로 수덕사로 내려가지 않고 왼쪽 능선을 타면 4~5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일행들과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이 코스로 가기로 최종 결정했다.

수도권은 일주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리는 비 소식이 없는 충청 지역으로 이동해 등산을 하기로 했다. 연휴 막바지라 교통체증이 어떨지 몰라 아침 일찍 예산으로 출발했다. 대전에서 출발한 지인이 내포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그를 태워 함께 이동했다.

용봉산을 뒤로하고 수덕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수덕고개를 지나 수덕사로 들어가는 산문(山門)을 지나쳐 주차장에 들어섰다. 지인 말로는 이곳 식당을 이용하면 주차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주차를 마친 후, 우리는 등산 코스를 어떻게 할지 다시 논의했다. 수덕사를 거쳐 덕숭산에 오른 후 왼쪽 능선으로 하산할 것인지, 아니면 수덕고개까지 이동한 후 금북정맥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른 뒤 왼쪽 능선으로 하산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했다. 결국 후자로 결정했지만, 이를 위해 도로를 따라 30분을 걸어야 했다.

주차장을 나와 천천히 수덕고개로 방향을 잡으니 우리가 지나쳤던 산문이 다시 나타났다. 지인은 그 산문이 지어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산문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남기고 수덕고개로 향했다. 이 길이 바로 충청남도가 지정한 '내포문화숲길'의 일부라고 한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도로 옆 계곡에서는 물이 힘차게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려오는 차들이 무섭게 쌩쌩 지나가 조심스럽게 도로를 따라 걸었다.

수덕고개에 오르니 익숙한 등산로 입구가 보였다.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벌써 네 번째 이곳을 찾았다. 안내 산악회를 따라 한 번, 친구들과 두 번 이 길을 걸었다. 문득 예전에 가루실 마을을 지날 때 코끝을 스치던 딸기향이 떠올랐다. 수덕사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본격적인 등산로로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거미들이 밤새 쳐놓은 거미줄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오후가 되면 용봉산을 거쳐 온 등산객들로 붐비겠지만 아직은 한적했다. 천천히 오르다 넓은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감상했다. 예산의 넓은 들판이 황금물결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산을 즐기며 천천히 올랐다. 정상까지 두 시간이면 충분했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산을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려 한기가 느껴졌던 수도권과 달리, 이곳은 햇빛이 따사로워 바람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능선은 나무가 우거져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멋진 바위가 있어도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수덕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에 이르니 정상은 300m도 채 남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멋진 바위를 카메라에 담고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가야산과 예산의 너른 들판, 그리고 수덕사의 전경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예산 가야산 아래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가 있다. 오페르트가 이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했던 것은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정상에서 우리가 가야 할 오른쪽 하산길을 찾았다. 첫 번째 오른쪽 길은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었고, 그다음 길이 우리가 갈 길이었다. 천천히 하산을 시작하는데, 한 무리의 등산객이 오른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가려던 능선 길을 통해 올라오는 중이었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우리는 잠시 길을 잘못 들었다. 왼쪽으로 난 길과 봉우리를 넘어가는 길이 있었는데, 두 길이 다시 만날 것이라 생각하고 봉우리를 택했다. 하지만 그 길은 다른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다행히 100m도 채 가기 전에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달아 긴 '알바'는 하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 곳곳에 자리 잡은 바위들이 우리를 유혹했다. 바위만 보면 오르지 않고는 좀이 쑤시는 일행이 있어 우리도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바위 모양은 저마다 보는 사람의 감정과 인식에 따라 다르게 느껴졌다. 바람과 세월, 비와 눈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을 감상하며 걸었다.

버섯 모양 바위를 발견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누군가 오를 수 있도록 사다리와 밧줄을 설치해 놓았다. 그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보였다. 능선 아래 암자로 가는 길인 듯했는데, 출입이 통제된 것 같았지만 많은 사람이 다닌 흔적이 남아있었다.

수덕사와 인접한 암자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나 그 길을 따라가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택해 마침내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산행을 마친 후에 수덕사를 둘러보기로 했기에, 모든 짐을 차에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수덕사로 향했다. 내가 15년 전에 이곳에서 1박 2일 템플스테이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일행들이 신기해했다. 지금도 수덕사 템플스테이는 인기가 많다고 한다.

올라갈 때는 지나쳤던 수덕여관과 수덕미술관을 내려오면서 둘러보기로 하고, 곧장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 앞마당은 며칠 후 열릴 산사음악회 준비로 분주했다. 산사에서 음악회가 열리면서 대중음악가들의 활동 무대도 더욱 넓어지는 듯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이름난 수덕사 대웅전이다.대웅전은 단청도 되어 있지 않고 특이한 형태로 지어져 있다.

수덕사를 내려오면서 수덕여관을 들렸다. 산사의 아래에 있는 수덕여관은 예술가들이 머물러서 더욱 유명하다고 할 것이다. 일주문 앞에 있는 초가 형태의 가옥으로 본래 한국 최초의 여성 화백으로 알려진 나혜석이 처음 머물며 기거했던 곳이며, 이응노는 나혜석의 제자이며 이 곳에서 나혜석의 지도를 받아 화백에 입문했고 광복 1년 전인 1944년 수덕사 주지로부터 이응노 화백 개인 사비로 매입하여 수덕여관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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