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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 Aug 25. 2024

아빠의 제삿날


납골당에도 가지 않았다. 납골당에 가서 말한다고 한 듯, 현실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 마음가짐은 조금 변화가 있을 듯 하지만. 쿰쿰했던 장례식과 화장터 그리고 납골당. 그 모든 기억이 슬픔을 넘어, 무감정의 상태로 돌아선 상태였다. 다시 사이좋게 지낼 줄 알았던 친척들은 결국 며칠 가지 못했다. 역시 기존에 살아왔던 생활사고방식을 바꿀 순 없었다. '죽음'이 주는 효과는 반짝일 뿐이었다.  



내가 해야할 일로만 여겼던 안부와 챙김이 모두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아빠는 천국에 가셨다. 이 땅에서 아무리 소리쳐불러봐도 없다. 기억에만 존재할 뿐이다. 기억의 존재 횟수가 줄어듬은 있었지만, 깊이의 줄어듬은 없었다. 삶의 무게에 버거움을 느끼는 무척 힘든 나날들이었다. 나에게 암묵적으로 주어지는 기대와 의존이 나를 힘들게 했다. 



왜 내가 이걸 감당해야 하는 지, 원망하고 원망하던 날들이었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싫어질 만큼, 무겁고 부담스러워질 만큼. 나는 지쳐있었다. 아빠의 제삿날. 걷고 또 걸었다. 남산타워를 시작으로 북촌한옥마을, 영등포지하상가, 여의도한강공원까지. 걸었다. 흐트러지며 피어있던 꽃이 위로해주었다. 참 예쁘지? 너도 예뻐. 나도 살아있으니, 너도 살아있으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빠의 존재가 나의 삶의 유무를 결정할 수 없다. 슬픔의 깊이도 느끼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리가 터질 듯이 아픔을 느낄 때 생각났다. 아빠는 비가 올 때, 꼭 학교에 태워다 주었다. 본인이 쉬는 날에도 태워다 주었다.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늦은 시간. 나를 데리러 왔다. 살아있는 아빠의 무뚝뚝한 사랑표현이었다. 그 아빠의 사랑이 갑자기 지하철에서 느껴졌다.



사람이 꽉 차있던 지하철 5호선에서, 갑자기 숨 막히게 그 때의 기억이. 사랑받고 있었던 추억이 느껴졌다. 멈출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시간이 지났지만 사랑의 깊이는 변하지 않았다. 깊이 새겨진 사랑은 그가 이 세상에 존재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었다. 현실을 바꿀 순 없지만, 마음가짐은 변하게 해주었다. 아빠의 제삿날. 구김살없이 키우려고 했던 아빠의 정성을 담아, '나'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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