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r Review는 과학일까?
주말에 틈틈이 사진에 관련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라는 책의 "비평"과 관련한 챕터를 읽고 회사의 동료평가가 떠올랐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재직 중인 구성원뿐만 아니라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는 모두는 자신의 업무를 "예술적"으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각자의 업무 결과물은 일종의 작품이 될 것이고,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리뷰 또는 동료 평가는 작품에 대한 비평이 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Peer Review가 이른바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나름의 규율이 필요할 것입니다.
필립 퍼키스가 제시하는 비평의 마음가짐 중 일부를 차용한다면 보다 나은 리뷰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례하게 굴지 않는다.
경쟁을 조장하지 않는다.
열린 마음과 진지한 태도로 평가 과정을 진행한다.
대면 평가 시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견해를 듣고 싶다면, 토론 중에 자신의 성과에 대한 방어나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성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충분히 듣고 난 후, 만약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해도 된다.
이 과정에서 평가자의 태도는 겸손해야 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한 사람으로 머물러야 한다.
평가를 하는 유일한 목적은 동료들에게 과업에 대한 통찰력을 심어주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제공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
특히 평가자는 사실과 견해의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해야 하고, 이 차이를 뚜렷이 하면 토론의 폭은 한층 더 넓어질 수 있음을 잊지 않는다.
하반기 동료평가 시즌을 앞두고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모두가 자기만의 업무 '스타일'을 갖기를 바라며, 필립 퍼키스의 글 원문을 공유합니다.
비평
지금부터 전개할 내용은 내 비평 방식에 관한 것이다. 물론 내 방식만이 옳다거나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내가 구축해 온 하나의 체계이자 내 신념과 양심에 들어맞는 방식이며, 또한 수업 시간에도 매우 효과가 좋았다. 우선 나는 배움에는 두 가지 과정이 있다고 본다.
첫째, 갓 태어난 아이를 빈 백지(존 로크가 말한 정신의 백지 상태)나 빈 항아리로 가정한다. 이때 배움이란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며, 우리는 이를 교육이라 부른다. 즉 텅 빈 종이와 항아리에 무언가가 채워지는 것이다. 종 이에 쓰인 글의 수준이 높으면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을 습득하는 개인의 능력은 무척 다양하며, 분야에 따라 지능, 욕구, 재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두 번째 이론은 사람이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배움이란 어렴풋이 느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나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심오한 사상이나 개념을 접했을 때 전혀 생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닿는 이유를 두 번째 이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이때 교육이란 지식 습득의 과정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드러내고 닫혀 있던 뚜껑을 여는 과정이다. 위의 내용이 복잡한 문제를 터무니없이 간소화시킨 것으로 보여질 수 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수업 시간에 이 두 이론의 핵심을 매우 구체적으로 활용한다. 내 비평 방식은 두 번째 이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우리 모두 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열린 마음과 지성으로 작업을 계속하여 반드시 이 목적지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스타일이란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왔는지에 대한 족적이다. - 르네 도말 Rene Daumal
일단 이 전제를 받아들이면, 남은 문제는 선생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제대로 방향을 찾도록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것이다.
첫째, 선생과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비평이 가장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원형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 무대 위에서 매우 엄격하게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과 원칙이 있다.
- 무례하게 굴지 않는다.
- 경쟁을 조장하지 않는다.
- 예술가에게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관해 묻지 않는다. (비평은 심리치료가 아니다.)
-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이 직접 토론할 작품을 고른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반응을 원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이 토론의 대상이 되도록 자유롭게 요청할 수 있다.)
수업마다 모든 학생의 작품을 얘기할 필요는 없다.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작품이 토론 대상이 되었을 때, 작업을 한 학생은 토론의 초기 단계에서는 작품에 대한 사실들, 이를테면 사진을 찍은 장소, 렌즈나 카메라의 종류 같은 질문에 대해서만 답을 하도록 한다. 작품의 의도, 내용,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해선 반드시 대답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머지 학생들은 무슨 말이든 해도 된다. 미적, 정치적, 예술사적 의미 뿐만 아니라 자신의 꿈, 환상, 무심코 떠오른 연상들처럼 작품에 대한 것이면 뭐든 괜찮다.
만약 참가한 사람들이 열린 마음과 진지한 태도로 이 과정을 진행한다면 대단히 흥미로운 무언가가 일어나게 된다. 이를테면 작업을 한 학생은 동료들과의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실제 정보를 얻게 되고, 원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를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견해를 듣고 싶다면, 토론 중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방어나 설명은 절대 금물이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다른 학생들의 견해를 충분히 듣고 난 후, 만약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해도 되고 토론은 길게 연장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선생의 태도는 겸손해야 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한 사람으로 머물러야 한다.
비평을 하는 유일한 목적은 학생들에게 작품에 대한 통찰력을 심어주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 주 한 주가 지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면 학생들은 토론에 더 적극 참여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태도가 개개인의 작품 제작에 반영되며, 스스로 방향을 찾는 데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때 당신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토론에 참가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특히 선생이 주의해야 할 점은, 사실(조리개를 조일수록 피사계심도가 깊어진다)과 견해(이 사진은 매우 폭력적인 느낌을 준다)의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이 차이를 뚜렷이 하면 토론의 폭은 한층 더 넓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