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무엇일까
지난해 말 남은 연차를 소진하면서, 1년간 소진된 정신적 에너지를 보충하고자 미스치프(MSCHF)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피식쇼를 통해서 미스치프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미스치프는 2016년에 설립된 미국의 창의적인 콜렉티브(collective) 또는 스튜디오로,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독특한 프로젝트로 유명합니다. 전통적인 스타트업과는 달리, 미스치프는 특정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보다는, 정기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적인 제품들을 만들어내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주로 한정판으로 출시되며, 종종 기존의 사회적 규범이나 산업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습니다.
미스치프(MSCHF)의 주요 수익 모델은 주로 한정판 제품 판매와 독창적인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특정한 주제나 아이디어에 기반한 제품을 소량으로 제작하고, 이를 한정된 기간 동안만 판매하는 방식 등으로 수익을 창출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Big Red Boots”, “Satan Shoes”가 있습니다.
이처럼 미스치프는 전통적인 기업과 달리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다양한 수익 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미스치프는 지난 7월 Series C 투자를 받았고 아마도 5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술을 하는 그룹인 듯 싶은데, 외부에서 투자를 받아 사업을 성장시키는 스타트업이기도 한 점이 제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삶이 괴롭고 허무해질 때면 예술에 관한 책을 종종 읽습니다.
안정된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캄캄한 자취방에 혼자 누워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 금세 허무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떠나지 않았었고, 그때에는 허무함과 싸울 수단이 ‘예술’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속성이 곧 정의는 아니지만, ‘예술’을 정의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은 없었습니다. 단지 예술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볼 뿐이었습니다.
‘예술’이 갖추어야 하는 속성은 다양하겠지만, “탈주”야말로 예술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속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차가 다니는 길이 수월해지도록, 길에 일정한 홈을 낸 것이 선로의 시초였을 것입니다.
수레의 축을 선로의 홈 길이에 맞추는 규격화 작업이 이어졌을 것이고, 이러한 규격화 작업을 통해 교통과 산업이 발전하고 안심하고 여행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홈을 벗어나 불안정한 돌길을 신나게 달리는 것.
그것이 탈주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탈주는 기존의 평온함을 깨는 위험한 행위였기에, 추적이 시작됩니다.
한 손엔 법전을, 한 손엔 채찍을 들고 따라오는 추적을 요리조리 피하며 때로는 약 올리고 때로는 신나게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습이 예술의 주요한 속성이라 생각했습니다.
대림미술관에서 미스치프의 전시를 보며, 미스치프의 작품에는 예술의 속성이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미스치프는 2021년, 미스치프는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협력하여 “Satan Shoes”라는 이름의 한정판 운동화를 출시했습니다. 이 신발은 나이키 에어 맥스 97 모델을 기반으로 하여 제작되었고, 신발 안에 사람의 피 한 방울이 포함되어 있다는 컨셉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나이키는 미스치프가 나이키의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상표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 사건은 미스치프가 신발 판매를 중단하고, 이미 판매된 제품을 회수하기로 합의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전시회에서 제 눈을 사로잡은 전시품은 다름 아닌 미스치프가 그동안 겪어왔던 소송과 관련한 기록들이었습니다.
실제 소송기록들을 보고 나니, 스쳐 지나갔던 루이뷔통 가방을 축소하여 현미경으로 봐야 육안으로 확인되던 작품이 생각나서 다시 발을 돌려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 작품은 루이뷔통의 상표권 등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을까?”
“내가 미스치프의 사내 변호사였다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런 작업물이 어떤 메시지가 있을까?”
“이것이 과연 예술일까?”
등등의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Medical Bill Art" 는 2020년에 공개되었으며, 미국의 비싼 의료비 문제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미스치프는 실제 진료비 영수증을 예술 작품으로 변형하여 경매에 부쳤고, 이를 통해 모인 수익을 환자들에게 돌려주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영수증에 기재된 진료비를 작품의 가격으로 설정하여 판매하였습니다.
작품의 주요 컨셉은 의료비 영수증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켜, 사람들이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그로 인한 재정적 부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것입니다. 미스치프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 작품은 미스치프의 다른 프로젝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에 재직 중이고, 의료인 면허가 있어서 그런지 "Medical Bill Art"가 유난히 인상 깊었습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진료비, 건강보험 제도를 풍자하기 위해 영수증에 기재된 진료비와 동일한 금액을 작품의 판매가로 설정하여 판매하고, 그 수익을 환자에게 돌려준다니!
그저 영수증을 거대한 종이에 출력하는 과정만을 거쳤을 뿐인데 47,033 달러의 가치가 되어버린 작품을 보며, 탈주 정신과 공적인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커다란 수익까지 만들어낸 미스치프의 능력에 감탄하며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미스치프 또는 그런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안국역에 들러 아내와 먹을 베이글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며 회사 입사 초기에 대표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단짠님은 스타트업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스타트업이 사업을 할 때 꼭 선을 타면서,
합법과 불법 사이의 영역에서 플레이하며 돈을 벌려고 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건 단짠님의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공공기관에서 3년 10개월간 재직하다 처음으로 스타트업에 입사를 하고, 정말 적응이 너무 힘들어서 퇴사를 고민하던 입사 극 초기였습니다.
퇴근 후 멘토 역할을 해주는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를 켰고, 마침 “타다” 다큐멘터리가 나와서 시청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대표, 사내변호사, 임직원 모두-은 미래를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커리어를 걸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연민-어쩌면 주제넘은 감정이겠지만-의 마음, 동질감까지 밀려왔습니다.
많은 스타트업은 공격적인 법령 해석과 사업전략으로 기성의 회사들과 경쟁을 합니다.
합법이 사후적으로 법령이 바뀌어 불법이 되어 버리기도 하고,
불법이 사후적으로 합법이 되기도 합니다.
법령에 규정되어 있는 예외 조항, 각종 면제 조항들을 아군으로 삼아야만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생존전략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혁신을 꿈꾸며 법령을 공격적으로 해석해보기도 하고, 다양한 사업전략을 구상해 보기도 하고, 회사를 상대로 한 각종 허위 과장 민원 등에 대응하며 오히려 합법성을 인정받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예술’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탈주와 추적, 그리고 다시 유쾌한 탈주가 계속되는 것을 꿈꾸는 것이 어쩌면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속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의 연재는 ‘예술‘+’적‘으로 일하는 법에 대해 - 만약 그런 ’법‘이 있다면 - 이어나가 보려 합니다.
전시회에서의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