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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Oct 31. 2024

고향 상실의 시대, 잃어버린 시원을 찾아서

임화 <한 잔의 포도주>

고향 상실의 시대, 잃어버린 시원을 찾아서
-음주의 미학



최후의 결별에 임하여 무엇 때문에
한 그릇 냉수로 흥분을 식힐 필요가 있느냐
벗들아! 결코 위로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서는 아니된다

동백꽃은 희고 해당화는 붉고 애인은 그보다도 아름답고
우리는 고향의 단란과 고요한 안식을 얼마나 그리워하느냐
아 이러한 모든 속에서 떠나가는 슬픔을

나는 형언할 수 없다.


그러나 한 잔 냉수로 머리를 식힌 채
화려했던 희망과 꿈이 묻히는
무덤을 찾느니보단
아! 내일 아침 깨어지는 꿈을 위해설지라도
꽃과 애인과 승리와 패배와 원수까지를
한 정열로 찬미할 수 있는 우리 청춘을 위하여
벗들아! 축복의 붉은 술잔울 들자

-임화, <한 잔의 포도주> 중



 빌어먹을 철학자 하이데거는 근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라 했다. 인간은 본래 자신의 존재 근원과 깊이 연결되어야 하지만, 현대의 소란 속에서 잃어버린 뿌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우리는 기술과 함께 번영했지만, 그 번영 속에서 영적 빈곤과 상실감을 맛보며 흩어진 자신을 찾아 나선다.

 

 그 잃어버린 시원을 향한 갈망이 우리를 음주의 길로 내몬다. 술잔을 기울이는 행위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몸짓이다. 한밤중의 고요 속에서 홀로 잔을 채우면, 술은 단순한 액체 이상의 무언가가 된다. 술의 향은 의식을 흐리게 하여 세상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게 한다. 목을 타고 내려가

는 한 모금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영혼을 부유하게 만든다. 그 부유하는 감각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고향의 흔적을 찾다.



 술기운이 스며들면,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도 속으로 빠져든다. 그 파도는 잊힌 꿈과 과거의 추억, 영원의 시원에 대한 갈망을 띤다.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고동 소리에 안락함을 느낀다.



 음주의 한 순간, 영혼은 본질적인 고향을 찾아간다. 연어가 자신의 시원으로 회귀하듯, 우리는 잃어버린 고향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본래의 자신을 마주하며 잠깐의 평화를 누린다. 그 순간, 우리는 잃었던 감각과 기억을 되찾아 존재의 근원을 느낀다.



 그러나 연어처럼 완전한 회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술기운이 가시고 현실로 돌아올 때, 그 찰나의 고향도 함께 사라진다. 우리는 다시금 고향 상실의 시대를 사는 존재로 이 세상에 남겨진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의 경험은 영혼 깊숙이 작은 위안과 그리움을 남긴다.



 그래서 음주는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존재의 시원을 찾아가는 도정이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의 영혼이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그 경험이 켜켜이 쌓여 우리는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러니 술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의 물, 술, 불굴의 정신으로 술을 찾는다.

'10월의 마지막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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