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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사장의 시선

시작 1.

by 디케이


목차


시작하며
Episode 1. 사장의 시선

Episode 2. 기획팀장의 시선

Episode 3. 개발팀장의 시선

Episode 4. 영업팀장의 시선

Episode 5. 팀원들의 시선

Episode 6. 가족들의 시선 마치며



짙은 안개가 한강 위로 낮고 무겁게 깔려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뺨을 스치며 손끝은 감각을 잃어 가고 있었다. 나는 힘들 때면 자주 찾았던 마포대교를 천천히 걸었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고, 주변은 적막 그 자체였다. 어지러운 머릿속에는 실패와 후회의 조각들이 파편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힘들게 회사를 설립하고 그토록 열심히 달려왔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밤을 새우며 고민하고, 직원들의 급여와 회사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나날들, 회사와 나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던 내 정체성에 대한 생각들. 그러나 결국 회사는 깊은 수렁에 빠졌고, 어떤 기회도 더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회사 운영을 위해 당연시 여겼던 그 빚들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무게가 되어 버렸다. 나는 난간 앞으로 다가서서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검푸른 강물은 무섭도록 고요했다. 난간을 움켜쥔 손이 하얗게 질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깊은숨을 들이쉬자 눈가가 촉촉해졌다.


‘여기까지인가... 가족들은 어쩌지. 이 방법밖에는 없을까.’


떨리는 다리로 난간을 넘어섰다. 발아래로 펼쳐진 짙은 어둠이 내 모든 고통을 삼켜 줄 것처럼 보였다. 숨을 멈추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나는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순식간에 몸이 떨어졌다.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고, 귀를 찢는 듯한 바람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모든 것이 또 다른 공포로 다가왔다.


‘이러면 안 돼!’


뒤늦게 후회와 두려움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올랐다. 몸이 강물에 닿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과 함께 차가운 물이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숨이 막히고, 검고 차가운 물은 순식간에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지만 물속으로 끝없이 가라앉았다. 내 몸은 무겁게 가라앉았고, 빛조차 사라졌다.


‘내 가족들. 아. 안 돼, 이럴 수는....’


마지막 남은 숨마저 토해 내려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운 침실이었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거친 숨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꿈의 생생한 감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이런 꿈을 꿔야 하다니....’


차가운 현실이 다시 내게 밀려들었다. 그 꿈이 마치 예언이라도 되는 듯 불길하게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밀려들었다. 아파트들 사이로 아침 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내 마음속 어둠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시작 1


“사장님, 손님들 회의실에 다 들어오셨습니다.”


김윤서 팀장의 목소리에 나는 긴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었다. 몸의 긴장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번 발표는 코어테크의 가까운 미래 4년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다. 야심 차게 개발한 제품 ‘위도(Wido)’의 첫 고객 시연이자 회사의 또 다른 미래 발전을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자 다시 시작해 보자.’ 나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중앙 대회의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이미 개발팀장, 기획팀장 그리고 기획팀 몇 명이 이미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위도의 제안 발표를 들으려고 방문한 고객사인 유림일렉트릭 임원들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향했다.

오늘 우리 회사를 직접 방문 한 고객사는 유명한 글로벌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었다. 규모도 크고 관련 산업에 영향력도 큰 그런 회사였다. 특히 AI 기반의 제조공정 최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 여러 번 방문하여 설명회를 가졌고 그 끝에 이렇게 우리 회사까지 직접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순간이자, 앞으로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안녕하십니까, 코어테크 사장 박재호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코어테크까지 직접 찾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가 소개드릴 제품은 이미 여러 번 설명을 한 공장의 자율제조를 위한 기초를 다져 줄 AI 기반 솔루션인 ‘위도’입니다. 최근 많은 제조기업들이 공장 무인화를 꿈꾸고 있지만, 현실적인 시작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도가 그 첫 단계의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 되리라 믿습니다.”


내 인사말이 끝나자 가벼운 인사와 박수가 오갔다. 나는 짧게 숨을 고르고, 발표 자리에 섰다. 몇십 개의 슬라이드를 준비했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생각은 단 하나였다. 우리의 새로운 AI 제품인 위도를 어떻게든 잘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설득을 통해 우리는 더욱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희망이었다.


서두를 마친 후 발표를 이어 나가자 회의실의 집중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슬라이드 하나하나가 넘어갈 때마다 고객사 임원들의 눈빛이 달라졌고, 나는 긴장감 속에서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위도는 크게 두 가지 핵심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AI 기반 실시간 이상 감지(Anomaly Detection) 기능입니다. 설비에서 발생하는 온도, 압력, 진동, 속도 등 실시간 센서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설비의 정상 동작 범위를 벗어나는 이상 징후를 탐지해 알람을 발생시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 용접 공정에서 온도가 설정치를 초과하거나 진동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위도는 실시간으로 이를 탐지하여 ‘위험 신호’를 관리자에게 알립니다. 두 번째는 AI 기반 품질 예측(Quality Prediction)입니다.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완제품의 품질을 사전에 예측하고 불량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기능입니다. 특정 온도, 습도, 작업 시간 등의 조건에서 최종 제품의 품질을 수치화하여 미리 확인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내 차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기획팀의 김윤서 팀장이 다음 준비 발표를 위해 손을 들어 보였다. 이제 본격적인 제품을 잠재 고객에게 직접 보여 주는 시연의 시간이었다. 김 팀장의 지시에 따라 기획팀원들이 미리 준비된 데모를 실행했고 개발팀장도 함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데모 화면에서는 센서의 실시간 데이터가 눈부시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화면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어렵고 험난한 길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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