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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사장의 시선

시작 2.

by 디케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년 전, 처음 위도의 개발을 결심했을 때 개발팀장 서민우는 내게 아주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반론을 펼쳤다.


“사장님, 지금 우리 회사가 가진 인력과 기술력으로 AI를 통한 공장 자율화를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데이터의 복잡성도 문제이고, 기존 제조공장들의 데이터 수집 환경 자체가 체계적이지 못해요. 제대로 된 데이터를 얻어내기 힘듭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잠재 고객사도 우리도 제대로 된 준비가 안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저희 개발팀은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 더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시작하는 게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서민우 팀장은 평소처럼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었고, 전적으로 타당했다. 실제로 많은 제조 기업들의 데이터 환경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혼란스러웠다. 공정별로, 기계별로 데이터 규격이 달랐고, 결측치와 이상치는 셀 수도 없었다. 제조 라인에서는 초당 수백, 수천 개의 데이터 포인트가 불규칙하게 쏟아졌고, 이것을 정확히 수집하고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 수많은 회의와 논쟁, 긴 설득의 과정이 이어졌다.


“팀장님,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개발, 영업, 판매 모두가 어렵다는 거 나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습니까. 한 달 후는 시작하기 괜찮은 시점인가요? 내년은 좀 나아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AI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바로 지금 가야만 하는 일입니다.”


나의 필사적인 설득과 호소에 결국 서 팀장도 더는 반론을 펼치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을 듣고 한참을 침묵하더니 결국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생각을 제가 결국 말릴 수는 없으니 시작은 하겠습니다. 다만 시간과 자원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어려운 과정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사장님이 각오가 되어 있으시면 저도 예전처럼 달려 보겠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서 팀장을 포함한 개발팀은 정말 밤낮없이 연구와 개발을 반복했다.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정규화하고, 누락된 데이터를 보정했다. 센서에서 수집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정상 패턴에서 벗어나면 즉시 관리자에게 알람을 보내는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공정 데이터와 품질 결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학습시키는 품질 예측 모델을 설계해 실시간 품질 평가 점수를 도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데이터 처리 속도의 문제, 높은 정확도 확보 문제, 알고리즘의 오작동 등 무수한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좌절과 밤샘 작업 속에 직원들의 체력과 사기도 바닥까지 떨어진 날들이 있었다. 개발 과정에서의 잦은 실패는 나를 불안과 초조함의 늪으로 몰아넣었고,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자책이 매일 밤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해냈다. 부족한 리소스에도 불구하고 개발팀과 기획팀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드디어 이 순간, 고객 앞에서 당당히 제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 데모 화면을 바라보았다.


“다음은 저희 기획팀에서 실제로 ‘위도’를 시연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기획팀장 김윤서입니다.”


김윤서 팀장의 시연과 함께 진행된 차분한 설명에 모든 이목이 집중됐다. 화면에 제조공정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AI가 품질을 예측하고 이상치를 미리 감지하여 알림을 주는 과정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나는 화면을 조심스럽게 보면서 팀원들의 노고를 떠올렸다. 이 시연 하나를 위해 그들이 밤낮없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을 쏟았는지 잘 알고 있다. 시연이 끝난 후 짧은 정적이 흘렀다. 고객사의 기술담당 임원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기대 이상입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 적용 후 정확도나 안정성에 대해 좀 더 자료를 볼 수 있을까요?”


김윤서 팀장이 먼저 빠르게 응답했다.


“물론입니다. 저희가 추가적으로 검증한 현장 데이터와 사례를 곧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찾아내는 위도의 모습은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지난한 과정과 수많은 밤의 고뇌가 떠올라 목이 메었다.


‘이제 정말 시작이다. 과연 우리는 잘해 낼 수 있을까?’


발표가 끝나고 고객사 임원들이 자리를 떠난 후 나는 조용히 빈 회의실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또다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이 순간이 두려우면서도 가슴 뛰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김윤서 팀장과 서민우 팀장이 나를 향해 들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힘주어 웃었다.


“진짜 수고 많았어요. 모두에게 전해 줘요. 오늘 정말 잘했다고.”


숨을 돌리면서 혼자서 생각했다. 두려움과 희망은 언제나 공존하는 것이고 새로운 시작은 늘 이렇게 벅찬 가슴 떨림과 두려움이 동시에 다가온다는 것을. 이것이 바로 사장이라는 자리에서 내가 감내해야 하는 무게이자 축복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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