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결정을 내리는 건 언제나 어렵다. 결단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곤 하지만 사장 경력이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어려운 결정 앞에서는 주저하게 된다. 어쩌면 어렵지 않은 결정만 잘 내려 왔기에 결단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어렵고 중대한 결정 앞에서는 고민과 망설임이 몇 배로 크게 다가온다.
이번 고객사의 제어 기능 요구도 그랬다. 이 요구를 수용하면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무리한 추진은 내부 개발 일정과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나는 회사의 미래를 위한 결정 기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중요한 요소들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 요소들에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떠올렸다. 회사는 지금 초기 스타트업의 단계는 이미 넘어섰고, 이제는 더 나은 가치 창출과 성장을 위해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즉, 무리한 결정보다는 신중하고 명확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몇 가지 판단의 기준을 잡고 결정을 내린 후 신중하게 고객 책임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현재 단계에서는 추가 기능의 즉각적인 구현은 어렵습니다. 저희 내부적으로 신중히 검토해 보았지만, 안정성과 정확성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에서 고객에게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다만, 시간을 보장해 준다면 요청 기능들을 향후 개발 로드맵에 적극 반영하여 빠른 시일 내에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음은 홀가분하지는 않았다. 이 결정이 회사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번 고객사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걱정과 불안이 남았다. 그러나 리더로서의 책임과 회사 전체의 미래를 위해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날 저녁, 영업본부장 강태우, 기획팀장 김윤서와 함께 근처 조용한 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강 본부장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객이 추가 요구를 했을 때 저도 솔직히 머리가 아팠어요.”
“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본부장님. 쉽게 안 풀리네요, 이 비즈니스란 게. 사실 개발팀장이 반대만 할 때는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기회가 어떤 기회인데... 그래도 지난번 발표 자체는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고객이 진심으로 관심 있게 들었던 것만 해도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소주를 못 마시는 김윤서 팀장이 맥주잔을 들어올리며 우리를 바라봤다.
“맞아요. 사실 제어 기능 요청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제품의 가능성을 인정한 거잖아요. 다들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죠.”
강 본부장이 맞장구를 쳤다. 나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요, 우리가 지금 제어 기능을 무리하게 추진해서 기존의 중요한 일정들이 흔들리는 것보다, 이번 결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더 안정된 기반을 다지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김윤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리고 이번 고객 요청 덕분에 앞으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로드맵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고객 니즈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AI도 능동적인 제어까지 포함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겠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강 본부장이 다시 한번 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고객을 유치하는 일은 못했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일만 남았네요. 솔직히 말해서 결정이 참 쉽지 않았을 텐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고객의 공식 발표 전이니, 유치하지 못했다는 말은 마시죠. 하하. 회사 설립 후 1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 결정이란 게 여전히 어렵네요.”
모두 웃으며 서로의 잔을 부딪쳤다. 긴 하루였지만 이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 팀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어려운 결정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같이 있으면 잘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