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야심 차게 준비한 제품 ‘위도’의 첫 고객을 잡을 기회를 놓친 다음 날, 나는 이른 아침 사무실에 혼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창문 너머 흐릿한 하늘과 아침 안개가 자욱한 도심 풍경이 오늘따라 유독 가슴 깊숙이 와닿았다. 사실 이번 고객의 추가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안타까웠지만, 여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신사업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어떤 직원들의 눈에는 단지 피곤하고 불편한 변화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도전해야만 한다는 게 내 확고한 믿음이었다.
처음 회사를 창업했을 때, 미래를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하루하루 매출을 내고 생존하는 것만이 목표였다. 그래서 지금 눈앞에 있는 일에만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가끔씩 작은 여유가 생기면, 회사가 나아갈 길을 흐릿하게나마 상상해 보곤 했지만, 그때는 명확한 비전보다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린 지 3년쯤 지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멈춰 섰다.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최소한 앞으로 10년은 바라볼 수 있는 회사의 목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다양한 책을 읽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선배들을 만나며 밤을 새워 가며 미래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매출을 높이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일은 비교적 명확했지만, 미래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너무 불확실해 큰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때부터 현재의 능력이나 당장의 시장 상황을 넘어서서 앞으로 몇 년 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IT 회사가 경험도 없던 ‘제조업’ 분야에 뛰어들었고, 그 결정이 지금은 회사의 핵심 사업이 되어 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중간중간 좌절도 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아서 건강도 나빠지고 매우 힘들었다. 어쩌다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막막했던 신사업이 이제 회사 수익의 중심을 잡고 있는 계속 사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서민우 개발팀장을 불러 회사의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어제의 피곤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팀장님, 어제 고객의 추가 요구 때문에 많이 피곤했죠? 우리가 준비한 제품이 앞으로 회사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오시라 했습니다.”
서민우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솔직히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빠듯합니다. 또 위도 제품 개발 로드맵에 당장 제어 기능까지 추가하면 개발 일정 전체가 흔들립니다. 상당히 무리가 많아서 고객 요구 사항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알아요. 저도 잘 압니다. 다만, 우리 회사가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고 미래에도 살아남으려면 지금의 이 새로운 제품을 반드시 더 강력히 만들고 성공시켜야 합니다. 물론 당장 어렵다는 거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길게 보고 꾸준히 준비하면 결국 시장에서 인정받는 핵심 제품이 될 거라는 것도 나는 확신합니다. 서 팀장이 지금 어렵다는 것도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최선을 다해서 계속해 나가자고요.”
서민우 팀장은 긴 숨을 내쉬었다.
“네, 사장님. 사실 저도 이 위도 개발 프로젝트가 회사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제어 기능 개발을 무작정 시작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로드맵으로 다시 잘 들여다보고 준비해 보도록 해 보겠습니다.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 팀장과의 대화가 끝난 후, 나는 바로 김윤서 기획팀장과 회의실에서 만났다. 김 팀장은 이미 새로운 기획안을 들고 들어왔다.
“사장님, 고객의 요청에 당황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시장이 원하는 방향이 조금 더 분명히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롭게 수정된 위도 기획안을 한번 보셨으면 좋겠어요.”
김 팀장은 자세하게 새로운 기획안을 설명했다.
“이 기획안은 우리가 단기적으로는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매우 가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 당장은 고객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순 없지만, 우리는 더 긴 시간을 보고 움직여야 해요. 그게 바로 계속 사업의 핵심이죠.”
김윤서 팀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네, 사장님. 솔직히 회사가 자꾸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게 직원들 입장에선 힘든 부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회사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계속 이렇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다 보면 결국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조급한 시대 속에서 회사는 언제나 빠른 결과와 신속한 결정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빠르게 내놓고 빠르게 접는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회사가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과거에 준비한 사업이 현재의 수익을 내고, 지금 준비하는 사업이 미래의 수익원이 되어야 한다.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우리가 준비하는 이 새로운 사업들이 몇 년 뒤 회사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날을 위해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걸음을 옮겨 나가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