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1.
그렇게 투자유치를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한 후 결전의 날들이 찾아왔다. 회사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IR 발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석하면서 만든 IR 자료를 기반으로 투자자들에게 우리의 모든 걸 보여 줘야 했다. 첫 번째 발표 날, 나는 혼자 투자사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를 맞이한 무거운 공기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더 이상 긴장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준비해 온 자료를 펴며 차분히 말문을 열었다.
“저희 코어테크는 제조업이 AI 자율제조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 기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주력 제품인 넵투와 넵포머는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이 두 가지 제품을 통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정확하게 수집, 분석하고 제조 현장의 경쟁력 향상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이어 나갔다.
“지금 제조업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AI 중심의 자율제조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희 코어테크는 필수적인 제품을 제공하여 이미 많은 고객을 확보했고, 확장 가능한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희는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 투자하시면 앞으로 3년 이내에 명확한 매출 성장과 시장 점유율 상승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표가 끝나고 긴장된 마음으로 투자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날카로운 질문이 많았지만 다행히 모두 예상한 질문들이었다. 나는 자신감 있게 모든 질문에 대응했다. 후회 없이 발표를 잘 끝냈기 때문에 성공적인 투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하게 되었다. 그러나 며칠 후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검토 결과, 이번 투자 건은 저희가 함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귀사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아쉽지만 단지 한 번의 실패라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네 번 같은 거절이 반복되었고 내 자신감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발표 때는 투자자들이 우리 회사를 직접 방문해서 진행됐다. 경영지원팀장 최영진과 기획팀장 김윤서, 개발팀장 서민우까지 모두 함께 자리했다. 팀장들의 든든한 존재가 내게 힘이 되었고, 나는 더 열정적으로 우리 회사의 비전을 설명했다. 발표 후 최영진 팀장은 투자자들에게 우리 회사의 재무 구조와 안정적인 성장성을 강조했고, 김윤서 팀장은 전략적 시장 확장 방안을 명확히 제시했다. 서민우 팀장은 기술적인 질문에 명확하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발표가 끝나고 투자자들이 나가자, 네 사람은 서로를 격려했다. 이번엔 될 수 있을 거라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또다시 실망스러웠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발표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점점 반복되는 실패 속에 회사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져 갔다. 여덟 번째 발표가 끝나고 나서 경영지원팀장이 지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말했다.
“사장님, 우리의 뭐가 잘못된 걸까요? 투자자들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 기술이 부족한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뭔가 잘못 제시한 걸까요?”
기획팀장 김윤서의 얼굴에도 짙은 피로감이 묻어나 있었다. 그녀의 질문에 나도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망할 시간도 없이 아홉 번째 IR 발표날이 돌아왔고 우리는 역시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밤을 꼬박 새워 발표 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발표 연습을 반복했다. 회사의 가치를 투자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는 또다시 거절이었다. 열 번째 발표가 다가왔을 땐 이미 회사 내부 분위기는 깊은 좌절감과 피로감으로 가득했다. 누구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모두를 사로잡고 있었다. 열 번째 발표는 투자사에서 진행되었다. 발표장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처음과는 달리 무거웠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남아 있는 힘을 모두 짜내서 열정적으로 우리에 대해서 피력했다. 발표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투자사 관계자의 마지막 질문이 내 귀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좋은 내용이었고 잘 들었습니다. 다만, AI 기반 제품이 실제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빠르게 실현 가능할지 그 부분이 고민됩니다.”
‘저게 질문이야? 미래를 명확히 알고 있다면 내가 투자를 받으려고 이 자리에 있겠는가?’ 어색한 질문에도 최선을 다해 답했지만, 이미 경험상 느낌이 좋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어느 때보다 길었다. 며칠 뒤 역시 투자사의 답변은 같았다.
[신중히 검토했지만, 이번 투자 건은 함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