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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 봅니다

생각이 많을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한 생각

by 디케이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언제부턴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피트니스에서 러닝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1Km를 뛰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가끔 10Km를 쉬지 않고 뛰기도 합니다. 아직 꾸준함에 몸이 반응을 해 주니 반가워해야 할 일인 듯합니다. 실내에서의 러닝은 변수가 없습니다. 1시간 정도 뛰면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오디오북을 듣기도 하고 뉴스를 보기도 합니다. 1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여전히 운동하러 가는 게 망설여지고, 시작하면 그만하고픈 마음뿐입니다. 그럼에도 러닝이 주는 신체적, 정신적 개운 함이라는 선물 때문에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로 머리가 아픈 요즘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에 몸과 정신을 혹사하면서 몰입한다고 해서 빠르게 잘 해결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버려두고 모른 체 할 수도 없습니다. 일은 운동처럼 하고 말고를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려운 부분입니다. 머릿속에서 그 까다로운 것들을 끄집어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서 몸도 힘들어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일은 언제나 매끄럽게 스스로 잘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선택의 문제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처리할 수 있는 부분들을 우선 머릿속에서 비우기 위해서 혼자 여행을 왔습니다. 숙소는 주변에 상가도 집들도 없는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너무도 조용한 곳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해서 머릿속 문제들과 진지하게 마주하려 하니 두려움과 불편함이 몰려옵니다. 몇 시간을 챙겨간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여기서는 독서가 우선이 아니라 문제 해결이 우선인데...


책을 덮고 러닝을 우선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러닝을 시작한 이후로 아직 실내 피트니스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울퉁불퉁한 길, 바람, 높낮이, 시선, 풍경 등 겪어보지 못한 변수를 알지 못합니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복장을 챙겨 입고 마음을 다 잡습니다. 바닷가 둘레길을 뛰는 거니 음악도 듣지 않고, 오디오북도 듣지 않고 바람에만 의지해서 달려 보아야겠다는 대단한(?) 다짐을 하고 드디어 숙소를 나섰습니다.


더 넓은 바다와 시원한 바람에 몸을 의지한 러닝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1시간을 뛰기 위해서 꼭 필요한 오디오북, 음악, 영화 등은 더 이상 러닝에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길을 혼자서 10Km를 뛰었습니다. 그렇게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롯이 생각에 집중했습니다.


오늘 러닝이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좋은 대안을 바로 찾지는 못했지만 그냥 해 봄으로써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그냥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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