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가 들 수록 성숙해진다. 뭐, 말로는 대충 그렇다.
시간은 성숙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속 알맹이는 여전히 코딱지만 하면서 껍데기만 늙어 벼슬처럼 부리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인생 2회 차'라는 말을 듣는 애늙은이도 있다. 결국 사람 by 사람이라는 말이다.
시간은 저절로 사람을 영글어 주진 않는다.
농부가 물 주고 비료 주고 볕도 쬐어주는 농장 작물과는 다르다. 큰 나무들 틈사이로 겨우 내리쬐는 볕을 쬐고 악작같이 뿌리싸움을 해야 하는 야생처럼,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공부하고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어릴 적 나는 반에 꼭 하나씩 있는 '커서 개그맨 해라'소리 듣는 학생이 나였다. 그만큼 재미난 걸 좋아했고 활발했다. 당연히 그 당시엔 MBTI가 없었지만 충분히 E였을 거라 생각한다. 가장 앞에 나서서 친구들을 이끄는 대장부는 아니었지만 늘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누가 뭐래도 INFJ다. 천방지축 시절보다 얌전해졌다. 얌전해졌다기 보단 늙은이처럼 진득해졌다. 활발히 뛰노는 것보다 앉아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사색하는 맛을 알았다. 혼자 등산을 하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시간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럼 나는 성숙해진 걸까?
그저 늙었을 뿐이다. 주름이 많아지고 머리가 희끗해야만 늙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시절보다 더 늙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안에 많은 것이 쌓였다면 그것은 성장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시간만 지났을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변화가 무조건 성숙인 건 아니다. 퇴화 또한 변화다.
어느 방향으로 시간을 따라왔는가 하는 차이다.
열매를 맺기도 전에 시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나름 노력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뭐 했나 싶다. 지금 와서 써먹지도 못할 것들은 다 헛수고처럼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성숙하고 싶다.
나는 아직 결과를 얻지 못한 노력도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단 사실을 받아들일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나 자신을 환멸 하지 않고 위로해 줄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시간이 모든 걸 좋게 바꿔줄 거라고 믿고 있던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꽃은 지고 다시 핀다. 열매는 따먹어도 다시 그 과실을 맺는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밑동을 쳐내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계절은 돌아온다.
하지만 그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볕도 쬐어주고 물도 뿌려주고 비료도 줘야 한다. 성숙하기 전에 시들어버리지 않도록.
나는 여전히 시간을 따라가고 있다.
이제는 그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정말 성숙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