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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Jan 20. 2021

퇴사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며칠 전, 문자가 왔다.


“ㅇㅇ아, 문자 보면 연락 줘.”


익숙한 전화번호는 몇 년 전에 퇴사한 회사의 사장님의 것이었다. 딱히 반갑지는 않았다. 연락의 이유가 90% 이상의 확률로 '재입사 권유'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갑지 않았던 이유는 중반에 얘기 하도록 하겠다.

퇴사한 후, 2주도 채 되지 않아 사장님께선 나에게 재입사를 권유를 했고, 그 이후로도 두 어번 연락이 왔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나에게 연락을 달라고 한 건지 예상이 가능했다.


대놓고 싫은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사람 일은 어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전화를 걸었다.


“어, ㅇㅇ아. 잘 지내?”
“네.”
“일은 다니고?”
"아뇨. 안 다녀요.”
“다름이 아니라 다시 일해줬으면 좋겠어서 전화를 했어.”     


그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지원자들이 더러 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다시 나를 부르는 건지 궁금했다. 사장님께선 이미 했던 직원이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새 직원을 뽑으면 일 다시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장님께선 내가 따로 하고 싶은 일을 준비 중이라고 말씀드려도 계속 나를 회유했다.


“일단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좋게 생각해봐.”


싫은 티는 내지 않더라도 거절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끝없이 부탁을 하셔서 대놓고 거절을 하진 못했다.




재입사 권유가 반갑지 않았던 이유는 사장님께서 날 해고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보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재입사를 거절한 가장 큰 이유가 해고에 대한 보복은 아니다.

나를 해고시킨 이유에 대해서 추측해보자면, 그 당시 내가 조금 감정적으로 일을 했었기 때문에 사장님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를 해고시켰던 것 같다. 어린 나이라고 다 포장이 되는 건 아니지만,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 감정적으로 사장님을 대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업무 태만은 아니었다. 만약 업무 태만이 해고 이유였다면 나에게 몇 번이나 연락 와서 재입사를 권유하진 않았을 것이다.


출처 Unsplash @mia-baker


감정적으로 일했던 가장 큰 이유와 재입사 하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임금체불 문제였다.


당시 최저시급만 받고 일을 했었는데, 월급으로 따지면 100만원 초반이었다. 많은 월급이 아니다. 또, 아주 작은 회사여서 직원이 나 혼자였기에 나에게만 돈을 지급하면 됐었다. (물론 거래처에도 지급할 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을 제때 받은 적은 딱 두 번이었다.

사실 면접을 볼 때, 사장님께선 수금 문제로 월급이 밀릴 수도 있다고 했으나 난 '한 두 번 그렇겠지.'라고 생각했고, 최대한 빨리 취직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무작정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러나 첫 월급을 받을 때, 1년 째 일했을 때. 딱 두 번 빼고 며칠 씩 밀렸다. 일주일 정도 밀릴 때도 있었다. '몇 개월씩 밀리는 것도 아니고 겨우 며칠인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약속된 날짜에 월급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건 애초부터 기업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자취를 하고 있었더라면 나는 월세나 각종 공과금 내야 할 돈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해있었을 것이다. 월급을 제때 지급하는 것은 회사가 직원에게 보여야 할 최소한의 배려고, 원칙이다.


임금체불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 또다른 이유도 있다. 내가 학창시절에 다녔던 학원에서 10년 넘게 일하신 학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학원 원장선생님께서는 선생님들 월급 날짜가 돌아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빚을 내서라도 제때에 월급을 챙겨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직원들에게 제때에 월급을 주는 것은 약속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하셨다. 월급이 밀릴 때마다 난 그 말씀이 계속 떠올라 사장님과 원장선생님의 모습이 굉장히 대비되어보였고, 불만은 더욱 커져갔다.


(회사에 대해 너무 안 좋게 작성한 것 같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자식 같다고 브랜드 있는 패딩도 사주셨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땐 일찍 퇴근시켜주시곤 하셨다.)


출처 Unsplash @marcel-strauss


월급이 하루라도 밀리는 회사는 당장 그만두어야한다는 네티즌들의 말에 '그만둬야 맞는건가?' 고민했지만, 적어도 2년은 다녀야 다음 회사에서 경력으로 인정해줄 것 같아서 조금 더 버티기로 했다. 그런데 난 2년을 다 채우기 전에 해고 통보를 받아 그만둬야 했다.


일주일간 인수인계를 하고, 퇴사를 했다. 그러고 2주도 되지 않아서 다시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다시 일해줄 수 없겠냐는 연락이었다.


“그 분은 그만뒀어요?”
“내가 뭐라고 좀 했더니 연락도 없이 그만둬버렸네.”


당시 재입사 권유를 받을 땐, 월급 문제 뿐만 아니라 그 일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이 일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맞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땐 다른 길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고, 다 그 업계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지금이라도 그 업계에 발을 다시 들이더라도 다시 전 회사로 가기는 싫다. 또다시 월급 문제로 날 괴롭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내가 '재입사를 거절한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그랬다. 그때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그때의 상황이나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을 뿐 최선이었다고. 내가 후회하는 것은 그 당시 내가 한 선택이 최선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내가 다시 재입사를 하겠다고 결정했어도 난 또다시 후회했을 것이다.


난 그때 내가 내린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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