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만 집착했던 운동의 반경이 넓어진 건 족저근막염이 생겼을 때다. 발목 인대 파열 수술후에 나타난 후유증이었다. 할 줄 아는 운동이라곤 달리기밖에 없는데 뛰기는커녕 걷기도 힘들어 대안으로 요가를 택했다. 유연한 사람만 하는 정적인 운동이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몸이 무거워지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집에서 가장 가까운요가원을 찾았다.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찾아간 요가원 치고는 좋은 곳이었다. 나에게 좋은 요가원이란 나와 호흡이 맞는 선생님이 있느냐를 뜻한다. 샤워장이 깨끗하고, 빛이든 소음이든 주변 공해가 없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요가의 매력은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대로 내 몸을 통제한다는 점에 있다. 머리로 땅을 짚고 서겠다(시르사사나)거나, 팔뚝 위에 무릎을 얹겠다(바카사나)고 생각하며 수련을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그 동작 언저리에 다다른다. 요가에는 경쟁이 없다는 점도 또 다른 매력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내 몸이 허락하는 정도에 맞춰서 수련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칭찬을 요가 선생님에게 듣는 건 보너스. 이런 매력 속에 빠져수련을 하다 보니 나를 괴롭혔던 족저근막염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꾸준히 요가원에 다니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선생님들이 지도자 과정을 권한다. 국가 공인 요가 강사 자격증 같은 것은 없고 학원별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처음에는 장삿속이라 여겼던 나도 결국 빈야사를 시작으로 아쉬탕가, 비크람요가,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까지 땄다. 내 경우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8시간씩 수업을 두 달간 듣고 필기, 실기 시험을 보고 나면 자격증을줬다. 성인을 상대로 꽤나 비싼 돈을 받고 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출석만 착실히 해도 자격증은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매관매직처럼 돈 내고 자격증을 사는 기분이랄까.
실제 요가 강사가 되려면 자격증을 딴 요가원에 들어가서 전단 돌리기, 청소, 회원 응대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틈틈이 수업을 하며경력을 쌓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애초 이름난 요가원에서 자격증을 따 놓는 게 향후 구직에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였던가 발리였던가 유학을 다녀오는 분들도 있는듯하다. 지도자 자격증 수업을 들으며 한창요가에 빠졌을 때는 머리서기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일 그만두고 요가 강사나 할까?' 같은 소리를 몇 번 했었다. 신체적 능력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프랑스에서 살다가 3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어쩐지 재미가 없었다. 파리에 있을 때는 매일이 여행과 같았는데, 그런 설렘은 산화했고 일상이라는 창고에갇힌 바싹 마른 장작이 된 듯했다. 예전의 나는 어떻게 버텨왔던 거지? 매일이 즐거웠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까지 매일이 괴롭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렇게사색의 숲을 걷다가 문득 요가가 나의 해방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길로 한국 사회 적응을 핑계로 미뤄온 요가원 찾기에나섰고 한 곳에 정착했다. 집이랑 멀다는 게 단점이지만, 훨씬 큰 위로를얻고 있다.
올해의 목표는 핀차마유라사나, 한국말로는 깃털 달린 공작새 자세다.지금은 짧으면 1초, 길게는 3초까지 유지하는 수준. 벽 없이는 연습도 못하는 걸음마 단계이지만 완성된 아사나에 머무는 그 찰나가 안겨주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아래팔만 바닥에 댄 채 두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는선생님의 시범을 처음 봤을 땐이건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막상 해보니 언젠가는, 그게 먼 훗날일지라도 '될것 같은데?'하는 자신감이 피어올랐다.역시 직접 부딪쳐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구나. 요가에 처음 발을 들인 게 10년쯤 전이지만여전히 요가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내가 계속 요가를 하는 이유겠지. 나마스떼!